(시) 숨넘어가는 이야기

양원역과 승부역에 얽힌...

by 올제


숨넘어가는 이야기 / 올제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에는

산과 사람들이 함께 살았대요


산나물 캐서 쓴 나물밥 해 먹고

태백 간 아버지들,

석탄 캐서 검은 침 퉤퉤 돈다발을 이고 왔대요


춘양 오일장이 서면 산나물 보자기에 묶어 장날 구경을 갔대요


산나물 판 돈으로 쑥절편 한 다발에 콩고물 좀 사 얹고

장난만 칠 양으로 권총 한두 개 사고 꽃밭 흐드러진 몸빼바지 하나 샀대요


장이 파하면 열차 타고 돌아왔대요


사람길도 없고 찻길도 없었대요

기찻길만 있는데 기차역은 없었대요


원곡마을 지날 때 짐보따리 내던지고

열차와 사람들은 다음 승부역까지 가야만 했대요


승부역에 내려 기찻길 위로 걸어 돌아오다가 마주 오는 열차를 만나면 사람들은,


인사도 못하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산산조각 되어 떨어졌대요


던져둔 짐보따리만 오래오래 살았대요


다음 해 봄,

쑥향 자욱한 꽃밭에서 일곱 살 꼬마들이 권총 놀이를 했대요


누구 하나 죽으면 깔깔깔 웃어 숨넘어갔대요.


하늘로, 자꾸만 하늘로,

사람들이 갔대요


사람들이 죽는데 나라님은 맨날 바빠 죽겠대요


마을 사람들은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았대요

꼬마들이 권총을 버리고 시멘트 범벅이 되었는데

누구 하나 얼굴에 묻으면 깔깔깔 웃어 숨넘어갔대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차역을 지었는데


그러고도

한참을 기차는,

멈출 수가 없었대요


나라님이 너무 바빠 멈추라고, 글쎄, 말을 안 했대요


나라님처럼 기차가 말도 없이 지나가 버릴 때도

꼬마들은 손을 흔들며 깔깔깔 웃어 숨넘어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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