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잊을까

이관순의 손편지[30-14]

by 이관순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잊을까


문장으로 삶의 시름을 풀어주던 안동 여자. 작가 김서령이 암 투병 끝에

떠난 지 2년입니다. 만난 적은 없어도 문장의 결이 고와 가깝게 느껴온

분이었어요. 따뜻하고 단아하고 때로는 아련하게 아득하게… 그녀의

문장에는 늘 그리움의 글향이 배 있어요.

자신을 ‘생활 칼럼니스트’로 이름하고, 평범한 일상에 숨은 세계들을

꼼꼼한 시선으로 담아내곤 했지요. 출간 1년이 돼서야 그녀의 유고 산문집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푸른 역사)를 읽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를

통해 접했던 음식들을 정갈한 감성과 문체로 풀어놨더군요.

배추적, 호박전, 쑥국, 취나물, 집장 같은 소박한 우리의 옛 음식에 시선이

꽂힙니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정성이 있고

그리움이 배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음식이 그녀의 손끝을 거치면서

색과 빛으로 살아나는 이유입니다.


7월 15일, 내일이 어머니 기일인데, 읽은 책이 공교롭게 엄마의 음식이고

그리움입니다. 늦은 밤, 아낙들이 모여 배추적을 해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듯,

나도 오늘 따뜻한 배추적을 생각합니다. 해마다 어머니 기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한 발짝 먼저 움직입니다.


“저녁에 뭘 해 먹지?” 한때 수없이 들은 어머니의 고민입니다. 그래도

때마다 밥상엔 어머니의 사랑이 채워 있었지요. 배추와 무는 주 메뉴입니다.

고추와 상추에 소스로 된장 한 보시기 더해지고, 김치를 결 따라 쭉쭉 찢어

밥숟갈 위에 걸치면 그것만으로 밥 한 그릇이 뚝딱이 었지요.


길쭉이 쪼갠 무를 우걱우걱 씹을 때도 와삭와삭 소리를 더해야 제맛입니다.

음식의 제 맛은, 씹히는 소리까지 가공하지 않은 자연적이어야 좋다는

조상의 지혜를 어머니를 통해 듣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뛰놀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타 준 황설탕 물을 한 대접 벌컥벌컥 들이키던 때의 황홀감이

뜬금없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유고집 문장은 무심코 잊혀온 내 그리움의 기억들을 줄줄이 소환해

냅니다. 순간순간 경험했던 일들이 열린 오감을 통과하며 영롱한 빛깔과

색깔로 어제의 일처럼 되살려 놓습니다. 비 오는 날, 어머니가 부쳐준

부추전을 찢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머니가 세 아들 학비를 벌충하려고 난생처음 이웃 아주머니를 따라

인삼장사를 나갔던 기억도 납니다. 집이 인삼 곳으로 유명한 금산이라

가능했지요. 닷새씩이나 집을 비우고 인삼 보따리 행상에 나섰던

어머니는 이문은 고사하고 터진 입술에 퉁퉁 부은 발을 절룩이며

돌아오셨습니다.


아픔이 사람을 사무치게 합니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형제처럼. 여름이 오고 아들들이 도시에서 오는

주말엔, 우리 집 들마루에선 소 잡는 소리를 냅니다.


무쇠 식칼을 들이대자 ‘쩍’ 수박 갈라지는 소리가 납니다. ‘와아- 잘

익었다!’ 그때의 탄성은 21세기 문명 속 어느 소리보다 예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요.


어머님 기일이 되면, 바람결처럼 단순하고 순박했던 시절의 그리움에

목이 탈 때가 있습니다. 그리움은 인간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그리움은

시간의 침식을 이겨냅니다. 어머니가 쪄낸 감자 한 소반엔 문명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오직 순수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꽉 차 있지요.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과감하게 현대 도시 위에 펼쳐놓은 7월 개봉된

영화 ‘트렌짓’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 들려줍니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중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


어머니 기일을 앞두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엄마랑 나랑 누가 먼저 잊고

지낼까?” 그러면서 알아차립니다. 먹장구름에 가려있어도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빛난다는 사실을. 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어머니는 제자리를

지키고 오늘도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음을.

무수한 별들이 땅 위의 누군가를 기억하겠구나. 맞아, 잊고 지내온 건 바로

나였구나. 잊으며 잊히며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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