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이관순의 손편지[30-15]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시름에 많이 아팠던 여름입니다
물에 잠긴 집들, 끊어진 다리,
파란 지붕 위로 올라간 세 마리 소
한 아저씨가 쓰레기 더미에서
사진액자를 찾아 수건으로 훔치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단란했던 시절,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가족 넷이 환히 웃습니다.
한껏 차려 입고 맘껏 행복해합니다.
아버지가 암으로 이승을 버릴 때도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도
아들 힘들다며 어머니가 요양원을
자원할 때도 가족은 웃습니다.
웃음 속에 흐르는 애잔함이란
아프다 저리다를 입에 달고 살던
한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9일은 가을을 알리는 한로(寒露).
풀잎에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산 위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여름을 위로하는 어진 손길입니다.
늦지 않게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입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현관의 신발들
덕지덕지 떼 묻은 여름의 잔해들
신발 한 짝씩을 손에 들고서
물로 씻고 정성스레 닦아낸 후
가지런히 줄을 세워 말려야 해요
신발장의 신발 박스는 내려서
그 속의 신발은 꺼내놓고
여름 신발은 담아 올립니다.
신발장이 정리되는 동안
신발은 새집에 들 생각에 부풀고
꿉꿉하고 눅눅한 마음은
가을바람을 기다려온 시간에 부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