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01]
옹이가 박혀있던 자리
시 문화원 초청으로 인문학 강의를 위해 춘천을 찾았습니다. 경춘선을 타고
가는 동안 봄은 강물을 따라서 온다는 이치를 알았습니다. 춘강(春江)의
물색이 스치는 창밖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일 봄소식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일까.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는 내게 한 여자가 다가옵니다.
“나 알아보겠어요?” 손을 내미는 여자... 20여 년 전, 잠실 공연장에서
꽃 같은 딸을 잃은 대학 친구였습니다. 그녀와는 동인활동도 같이하며
오래도록 가깝게 지낸 사이였지요. “어떻게 잘 있었어?”
“음, 숨 잘 쉬고 살아.”
주름이 곱게 내린 초로의 얼굴을 하고도 웃는 모습은 옛 그대로입니다.
가벼운 생활 얘기로 시작된 대화는 그녀의 인생을 해일처럼 덮쳤던 뉴키즈
공연 때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날 밤, 서재에서 1992년도 일기책을 꺼냈습니다. 그곳에는 그날 공연
광풍에 한 소녀가 밟혀 죽는 사고가 내 육필 기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둑했으면 사고가 나자
광란의 10대라며 아이들을 표적 했고, 행사를 주관한 업체만
공공의 적으로 몰았을까.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척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곳부터 알지 못했던 우리.
일기는 청맹과니 사회의 부끄러움을 들춥니다. 가슴을 저민 것은 공연
소동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딸을 끝내 죽음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그 어머니 때문입니다.
딸을 잃은 후 그녀와는 딱 한 번 만났을 뿐,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지요.
그녀는 지금 춘천에서 살고, 시청에 갔다가 우연히 내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화의 시침은 시공을 건너뛰어 멈추었지요.
“그런데 얼을 뺏긴 애가 아냐. 호기심 많은 10대 소녀였을 뿐.” 탄흔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녀의 넋두리... 딸은 2학년을 마치면서 올라간 성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노트에 깨알 글씨로 남은 1년을 다짐했던
평범한 여고생이었다고 했습니다.
심호흡을 했다가 말을 잇습니다. “친구가 표를 구했다며 공연을 가면
안 될까 묻기에 그래 고3 되기 전에 기분 전환해보는 것도 좋겠다.”
승낙한 그녀도 다를 바 없는 이 땅의 평범한 어머니였습니다. 친구 따라
나서면서도 “엄마, 나 이런데 가도 정말 되는 거야?”
설렘과 망설임을 보였던 청순한 딸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 그녀의 두 손이
얼굴을 감쌉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내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괜스레 친구의 가슴에 상처만 덧댔구나... 눈가가 젖은 그녀의
모습이 차창에 어른댑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을 몰라… 그즈음
어른들은 한 곳에다 넋을 빼앗기고 있었죠. TV 연속극 ‘사랑이 뭐 길래’가
방영될 시각이면 전화 통화량이 급감하고, 전화조차 실례라고 할 정도로
TV라는 우상에 갇혔습니다.
김국환이 코믹하게 부른 ‘타타타’도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지요.
김혜자가 능청스레 타타타를 흥얼대면, 이 땅의 어른들도 따라 흥얼댔지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냉소가 있다한들 이상할 게 없습니다.
하필 그 사고가 난 날은 민속절인 정월 대보름이었지요.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달은 천해를 떠가는 배이며, 영원히 상록 불사하는 계수나무가
자라나는 곳이었죠. 작았다가 커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달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영생불사를 동경했고, 생명의 부활과
회춘의 욕망을 다독였습니다.
그러한 저 둥근달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
계수나무와 토끼는 생각에도 없지요. 예전처럼 숲과 골짜기 등
온 누리를 감싸고, 탁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그 달은, 그 달빛은
영영 사라져 버린 걸까.
그래도 우리가 낙담을 털고 살아갈 수 있음은 희망을 되찾아주는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움츠리고 비탄하는 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봄의 화신들이 어둑한 창을 두드립니다. 지금쯤 양수리에는 생명을
탈환하는 생명의 경이가 시작되고, 빈 초원에 푸름이 꿈틀거릴 때면,
제주도의 유채꽃이 온 들판을 황금물결로 흔들겠지요.
청자 빛 한강에도 춘심을 가르는 바람이 붑니다. 환희와 비탄의 역사를
끌어안고 흘러온 강은 이 봄에도 그렇게 흘러갑니다. 장애물들을 만나
부딪쳐 깨지기도 하지만 다시 하나로 흐릅니다. 인생도 멍든 상처를
보듬고 흐르다 보면 치유도 되고 잊히기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고마웠어. 묵은 친구가 미더웠나 봐.
덕분에 마음이 개운해. 나 오늘 가게 계약해 빵집 해보려고.
잘할 수 있을까? 기도해줘.”
세월이 풀리는 두루마리 화장지 같이 헤프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월에 연민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정분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총이 아닐까?
그래서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쌓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쁜 마음으로 답 글을 올립니다.
“다 잘 될 거야. 담장 아래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