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02]
유한한 인생의 ‘친구 & 우정’
금요일마다 과천 대공원에 갑니다. 올금회(all金會)란 이름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두어 시간 둘레길을 걷기 위해섭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요일 약속은 피할 만큼 이 자리를 아껴왔습니다. 여섯 명이 고정
멤버로 참여하는데 모두 기이한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입니다.
고향도, 학교도, 전공도, 성격도 다 다른, 동질이란 면은 하나 없는데,
친구가 서로의 친구를 소개하며 만나기 시작한 것이 9명이 되고
반세기에 이르도록 정분을 쌓았습니다. 강했던 개성도 주장도 이젠 모두
둥글둥글한 돌이 되고, 무슨 말을 해도 흉이 되지 않는 헌 잠옷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지요.
교회 중직자이면서도 담배와 절연을 못해 온 친구가 마침내 금연을
선언하더니 박해받던 얘기를 꺼냅니다. 어느 자리에 가서든 담배를 꺼내
물면 눈을 치켜뜨고 타박하는 사람이 꼭 있었답니다.
“담배 피우세요? 교회 다니시잖아요?” 담배와 교회가 무슨 앙숙이라고,
물어도 꼭 교회와 엮어댄다는 겁니다. 그럴 때 그의 대답은 영화의
명대사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담배 때문에 교회를 끊으랴?” 친구의
유머감각은 늘 주변을 즐겁게 합니다.
그의 말대로 천국도 내세도 다 중요하지만, 이보다 앞서는 것은 오늘을
사는 내 모습입니다. 사람이 종교를 갖는 것은 선한 삶을 영위하려는
선택이고,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넓이와
깊이를 더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갖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지만, 신앙과 종교의 힘은
생로병사에 대한 수긍에 있습니다. 길어도 20-30년 후면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 지구에서 소멸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한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떠나도 누군가는 올 것이며, 그때도 검푸른 바다와 창공의 푸름은
여전히 광활하고,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은 지금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테니까...
신앙 같은 딱딱한 얘기를 함은 두려움을 호소하는 또 다른 친구 때문입니다.
암 선고를 받고 찾아온 친구와 서울대공원 호숫가에 앉았습니다. 담담하게
말은 해도 얼굴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내가 불쑥 “이참에 나랑 같이 교회 나가자”라고 했더니 얼굴을 붉히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아직도 무신론자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을 짜 봐도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는데 친구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합니다. “친구가 변변치 못해 미안타.”라고.
‘친구의 사랑’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아픔으로 몹시 괴로워할 때, 한 친구가 찾아와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느냐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많은 말을 해주었어요.
그의 말은 다 옳은 말 뿐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내게는 그 많은 얘기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다른 친구가 찾아왔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파하는
친구를 보고 눈물만 글썽이며 친구의 손만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때 친구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내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안개 낀 호수공원을 걷다가 젊은 시절,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내손을
잡아주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손에 느껴지던 친구의 따뜻한 체온이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슬픔의 짐을 나누어질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한 세계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늘 웃어주는 들꽃과 같이, 친구는
그러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가다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지는 사람이 있는가?
소식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떠오르는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친구가 그리울 땐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갯속을’ 산책해 봄도 좋습니다.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은 신기합니다. 숲마다 바위마다 호젓합니다. …
나의 생활이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의 친구들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 인생은 고독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모릅니다. 모두가 호젓합니다.”
우정은 만지지는 못해도 뚜렷이 존재하는 안개 같습니다. 옛날 작가들은
친구와의 우정을 작품만큼이나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존경한 싱클레어와의 우정은 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을 친구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돈독했지요.
생텍쥐페리는 나치 하에 있던 유태인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해 ‘어린 왕자’를
써 헌사할 만큼 친구를 아꼈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 작가 에밀 졸라와
화가 폴 세잔의 우정은 깊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폴 세잔이 법학과 미술을
놓고 진로를 고민할 때, 친구의 우정 어린 편지가 폴 세잔을
미술로 인도했습니다.
사람은 가도 빛났던 우정은 시공을 넘어 아름답고 녹슬지 않습니다. 이따금
친구와 우정을 허문 사람을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불면 훅 날아갈 그런 일들로 우정을 깨는 일만은 피했으면 합니다.
친구도 부모처럼 무한정 곁에 둘 수 없으니,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은
죽기까지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어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