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기억이 사는 곳

이관순의 손편지[30-03]

by 이관순

집은 기억이 사는 곳

하루는 짧지만 눈물겹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하루는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 귀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값진 시간은 가족이

모이는 저녁시간입니다. 어느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구호로

내걸었을 때 멋진 인문학적 성찰이라 반겼지요.

가족이 모인 저녁만큼 복된 곳은 없습니다. 1년 365일 아침에 흩어지고

저녁이면 모이는 곳... 냇물소리 같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

때로는 서럽게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상처를 얘기하며

싸매주는 곳…. 가정은 때 묻은 일상을 위로하고 웃음을 되찾아주는

행복제작소입니다.


생명이 숨 쉬는 곳엔 집이 있습니다. 마을에는 사람들의 집이 있습니다.

산에 가면 크고 작은 동물들의 집이 있고요, 호수 속에는 물고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에는 또 다른 생명체들이 구석구석에 집을 짓고 사람과

옹기종기 살려고 합니다. 마당엔 개집이 있고, 어딘가에 고양이와 쥐가 살고,

담벼락 아래에는 개미의 집이 있습니다. 한때 처마엔 제비가

집을 짓고 살았지요.


집은 생명이 위험에서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곳에는 저들만의 기쁨을 나누는 다양한 행위가 숨어있고, 행복을 찾는

온갖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쉽니다.


전국을 돌며 ‘추억의 구멍가게’를 그린 화가 이미경은 “집은 기억이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특정한 어느 시절을 떠올릴 때면 그 기억 속에는 늘

집이 있으니까요.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추억을 함께 만들며

살았는지, 그 기억이 숨 쉬는 공간이 집입니다.

가족이란, 함께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서로의 가슴에다 집을 짓고 들어가지요. 황동규 시인은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시적 정의를 내립니다.

사랑과 그리움을 묻어 둔 곳. 세상에서 실패해도 보듬어 주는 곳,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크면 남편의

번뇌가 작아지는 곳, 그곳을 가리켜 ‘기쁨과 슬픔도 같이 하니

한 칸의 초가도 낙원이라’ 말합니다.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인들의 자긍과 자부심을 높이는

애창곡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정서에 더 폭넓게 녹아있는 노래는

아마도 ’Home Sweet Home‘일 것입니다.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만 한 곳은 세상에 없다"고 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죤 하워드 페인입니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한 뉴욕의 집 말고는 평생을 유랑하며

고향집을 그리워하다가 이 노랫말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가 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던 날, '홈스위트 홈'이 연주되는

뉴욕 항에는 체스터 아더 미국 대통령(21대)이 직접 나와 그를 맞아요.

이유는 하나. 앞만 보고 세계최고의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미국인들에게

그 어떤 가치와도 비할 바 없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워싱턴 근교 공원묘지에 안장돼서야 비로소 집 한 칸을 마련했지요.

묘비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미국을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신 존 하워드 페인. 편안히 잠드소서.‘ 라고.

노래 가사는 우리에게도 낯익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이 노래는 남북전쟁에서도 진가를 발휘합니다. 강(Raperhannock River)을

사이에 두고 남군과 북군이 양보할 수 없는 프레데릭스버그 전투(battle

of Fredericksburg, 1862)를 이어갈 때입니다. 18만 명의 대군이 격돌한

이 전투는 1만 7천명의 사상자를 낼 만큼 치열했습니다.

밤이 되면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양 진영에서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때 북군이 연주한 곡이 ‘홈 스위트 홈’입니다. 행진곡을 연주하던 강 건너

남군도 어느 시점부터 같은 연주를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홈 스위트홈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게 된 거죠.


이 연주는 고향집을 그리워했던 병사들의 심금을 울렸고, 마침내 북․남군

할 것 없이 강물로 뛰어들어 ‘떼창’을 부르는 진풍경이 전선의 밤에

펼쳐졌습니다. 고향 집을 열망해온 마음이 적의 개념마저

잊게 한 겁니다.


이 노래로 전선에는 하루의 휴전이 선포되는 위력을 보였지요. 그렇습니다.

시공을 넘어 가정보다 소중한 건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엔 가정을 위협하는 불행의 요소들로 차있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집은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이, 해체되는 가정이,

흩어지는 가족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같은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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