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 20-09-18
해마다 이 맘 때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는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가을 향취에
문학적 서정이 더해진 ‘메밀꽃 축제’ 때문입니다. 문학작품이 향토정서와
어울려 이만큼 성공한 유례가 있을까.
1980년대 어느 늦가을, 영동고속도를 타고 강릉을 가는데, 텅 빈 들판에 선
야립 간판에 시선이 갑니다. ‘여기는 메밀꽃의 고향 평창입니다.’
‘금산인삼’도 아니고 ‘성주참외’라면 몰라, 메밀이 무슨 상품가치가 크다고 저
비싼 빌보드 광고를 하지?
그러다 맞아, 가산 이효석의 고향이 봉평이지. 소설이 향토정서의 대명사로
승화된 곳, 봉평은 이효석의 문학혼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힙니다. 가산은 고향 봉평에
지천으로 핀 흰 무명 같은 메밀꽃을 밑그림으로, 산마을을 떠도는 장돌뱅이
인생유전과 애환을 한 편의 주옥같은 수채화로 그려냈어요.
한때 <TV문학관>이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적이 있었지요. 그동안
수차례 미디어의 오락성에 문학성을 접목하려다 실패한 KBS TV가 공공성을
앞세워 재도전한 것이 ‘TV문학관’입니다.
그때 1회 작품이 ‘메밀꽃 필 무렵’이었죠. 강원도 산비탈을 덮은 메밀꽃과
달빛 서정을 잘 버물어놓은 영상미가 문학성을 높였다는 평가 속에
장수 프로그램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순수문학의 극화가 50회를 넘더니 급기야 100회로
치달립니다. 이에 고무된 제작진은 100회 기념작에 공을 들이는데, 그때
다시 ‘메밀꽃 필 무렵’을 들고 나왔지요. 이래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서정성 높은 문장은 메밀꽃 핀
밤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리움이 녹아 있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애틋 간절하고, 애증 연민까지
아련하게 어루만지는 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그런 사무침을
일으킵니다.
20년간 봉평장을 빠뜨리지 않는 허생원의 그리움. 부모에 대한 연모 속에
성장한 동이의 그리움. 대화마다 묻어나는 한과 그리움이 교교히 산곡을
흐르는 달빛에, 청아한 나귀의 방울소리와 교차합니다.
주고받는 얘기는 늘 같은 옛 추억을 맴돌지만, 지루한 밤길을 달래기에는
제격입니다. 이야기는 봉평 장을 보고 다음 장이 서는 대화 장으로 이동하는
밤길에 허생원, 조선달, 동이의 그리움이 전개됩니다.
20년 전 물레방앗간에서 만난 성처녀와의 꿈같던 시간. 이 밤도 허생원은
가슴에 흐르는 달빛 소나타를 듣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 나귀를
채찍질하는 동이의 손이 허생원과 같은 왼손잡이임을 달빛이 스칩니다.
봉평에서 태어난 가산은 어려서부터 객지를 돌며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평양 숭실전문대 교수가 되면서 잠시 안정기를 갖지만, 아내가 죽자
다시 방황하다가 몇 년 후 뇌막염으로 36세의 생애를 마감합니다.
“고향의 정경이 일상 떠오르는 법이 없고 고향생각이 자멸스럽게 마음을
눅여준 적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고 한 글에서 고향을 연민했습니다.
초등1학년부터 계모슬하를 떠나 살았던 소년에게 엄마 품이 없는 고향은
스스로 이방인을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한 팔자 탓일까. 가산의 유택도 떠돌기만 합니다.
아들이 젊은 나이로 죽자 부친은 미안함 때문인지 자신이 면장을 지낸
평창군 진부면에 유택을 마련해 주었지요.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74년 영동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인근 장평리로 이장합니다.
1990년대에는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과 맞물려 또 한 번 비운을 맞지요.
이미 ‘메밀꽃 필무렵’은 전파를 타고 널리 알려진 때입니다. 지자체가
이를 막고자 나섰고, 문화예술 단체들도 힘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진척은 없고, 결국에는 최후 이장통첩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에 놀란 유가족이 지자체의 만류를 뿌리치고 1998년 서울
근교로 이장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고향에 유택을 마련하지 못한 효석은 세 번째 공동묘지에 누어서야
쉼을 얻습니다. 그의 삶은 죽어서까지 방랑하는 나그네가 되었지요.
지금은 봉평 곳곳에 소설 속 흔적이 복원돼 세월의 풍화를 전합니다.
(글 이관순 소설가/daumcafe leeletter)14.4
*.. 한 때 소설의 후광과 건강식품이란 바람을 타고 전국최대 메밀산지로
각광을 받았던 봉평은 이후 일손 부족, 경작의 어려움,
낮은 경제성으로 산지가 줄면서 지금은 관상용 정도로 맥을 이을 뿐입니다.
그마저 올해는 코로나로 메밀꽃축제가 열리지 못해 아쉬워요.
사진 위로부터, 메밀꽃이 만개한 들판, 이효석 생가, 소설 원본,
이효석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