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짓는 천진암 성지

이관순의 손편지 19-14

by 이관순

100년 짓는 천진암 성지


전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매년 2천만 명이 찾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가우디 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

화려함에 놀라지만 지금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 착공해 ‘가우디 사망 백주년’에

맞추어 2027년 완공 예정이랍니다. 바티칸이 모든 성당은 베드로 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했지만 가우디 성당의 예술성을 인정해 예외로 했다는군요.


수많은 첨탑 중에는 예수의 사도를 상징한 높이 100m 탑 12개와 예수를

상징하는 높이 172m의 중앙 탑이 세워지면,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이 될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지 마세요. 우리도 100년 짓는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한국 천주교 발상지 성역화 사업으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세워지는 ‘천진암 성지’가 벌써 착공 40년을 바라봅니다.


1995년 7월 24일 일기에는 18만 평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 만 평짜리

천진암 성지사업이 적혀 있어요. 1983년 착수해 설계와 터 닦기로 30년,

골조공사 20년, 내부공사 50년, 해서 ‘100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초대 추진위원장 변기영 신부는 유럽의 로테르담 성당, 성 베드로 성당을 예로

“우리는 너무 당대주의에 사로잡혀 매사를 단시일에 해내려고 무리한다”라고

무모한 집착을 꼬집었어요. 내 임기에, 내 생전에, 완공하려다가 졸속으로

끝난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독립기념관은 5년 만에 완공하고, 예술의 전당은 3년 만에 뚝딱 짓는 그러한

졸속공사는 이제 시정돼야겠지요. “건물을 짓는 데는 건축기술 외에 반드시

세월이란 원료가 가미돼야 한다” 는 변 신부의 말은 울림 그대로입니다.


이후 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은 김남수 신부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바뀌어도 사업은 계속되는 풍토, 세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전승되는 문화가

아쉽다”는 안타까움은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대목입니다.


한국 기독교사에는 많은 순교의 피가 흐릅니다. 서울 마포 한강변의 절두산

성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가면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묻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물음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로 답을 찾은 분들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자부심을 갖는 데는 외국 선교사에 의한 복음 전파가 아닌,

가톨릭사에 유래가 없는 자생적 발상이라는 점이지요. 천주교회의 100년

성역 사업 현장 안내판에 이러한 자부와 긍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과 복음 전파 없이 순수한 학문 탐구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신앙으로 발전시켜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자랑스러운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공식적인 천주교의 시작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1784년이나, 이보다 7년 전 권철신이 이끄는 학자들이 천진암과 주어사를

오가며 강학 모임을 열어 조선 천주교의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어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이승훈 등 5인이 창립 선조입니다.


규모는 성지 안내도가 짐작케 해줘요. 광암 성당, 대성당 건립터, 천진암 강학터,

200주년 기념비, 한국 천주교 창립 성현 5위 묘역,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 성모 경당,

세계평화의 성모상, 박물관 등 순례에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인 천진암 대성당은 1987년 터 닦기 공사를 시작으로 1992년 대성당 터를

축성해 2079년 완공할 계획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천국 열쇠를 들고 선

베드로 동상과 마주칩니다. 석양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네요.


천진암 성지는 세 번째 방문입니다. 1996년, 2007년, 2020년,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아직도 세월이란 원료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 선 곳,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종이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떠오릅니다.


100세를 살아도 준공된 모습은 볼 수 없으니, 이번에도 조감도로 완공 후의

현장을 상상하며 돌아갑니다. 옛날에,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보고 뒤돌아

서시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떠오르네요. 유한한 인생을 생각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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