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도 제자도 사라진 세상

이관순의 손편지 19-15

by 이관순

스승도 제자도 사라진 학교


고향 친구가 점심이나 하자고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옛 친구와 만났습니다.

얘기 끝에 아들을 결혼시킨다면서 주례를 부탁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성장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 주례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물어봅니다. “집안도 좋고

아들도 훌륭한데, 존경하는 은사를 모시지않고?” “모실 분이 없다고 아버지가

정해 달라는 거야.”


예식을 앞두고 신랑 신부가 인사차 찾아왔기에 다시 확인합니다.

“막상 생각하니까 모실 교수님도 없는 것 같아요. " 마음이 씁쓸한 것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죠. 이전에도 유사한 답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게는 존경할 만한 은사도 어른도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끈끈했던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간극이 생기더니, 무덤덤한

그런 관계가 되고, 성적이나 주고받는 ‘갑, 을’ 관계가 돼버렸습니다.

부도덕함과 비윤리적인 행태로 지탄받는 분들이 느는 것도 ‘스승과 제자’

사이를 어둡게 합니다.


국회 청문회 때마다 고위 공직자로 나서려는 폴리패서 분들을 봅니다.

어쩌면 하나 같이 탈법, 위선, 부도덕함까지 구린 내를 풍깁니다. 신문마다

역겨운 이야기로 도배를 당해도 진실과 의혹은 다르다고 주장을 하지요.

그것을 보는 학생들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절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저

교수님은 진짜 정의로울 줄 알았는데, 더 흙탕물이네.”


스승이 안 보인다니까 제자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은 전설이 된 지 오래고, 좀 억울해도 선생님 말에 고개 숙이던

예전의 학생 모습은 이제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름 대면 다 알만한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일러준 이야기입니다.

교정 저만치에 휴지가 버려져 있는 것이 보이기에 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여학생을 불렀답니다. 그러자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제가 주어요?

제가 안 버렸걸랑요.” 남이 버린 걸 내가 왜 줍느냐면서 끝까지 사양하고

가더랍니다. 교감선생님은 교무실로 돌아와 담임에게 말했고, 담임선생님은

학생을 불러 주의를 주었습니다.


다음날 학생의 어머니가 교무실에 나타났습니다.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마음에 상처를 줬느냐고 따집니다. 휴지는 버린 아이가 줍는 게 맞지 않나요?

줍고 안 줍고는 우리 아이의 선택 아닌가요? 이를 두고 담임, 교감선생님까지

나서서 아이의 인권을 압박했다면서 사과를 요구합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꿀밤도 함부로 주지 못하고, 머리도

쓰다듬지 못합니다. 면전에서 눈을 부라리며 대들고, 잘못하면 폭언에 성희롱도

당한다니 조심스러워하죠. 자칫 고트리라도 잡히면 학부모들이 금세 달려올

태세입니다. 여기서 교권이니 교사의 권위를 말하는 건 쑥스런 일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정분이 옛말이 되었다면 마음 아픈 일입니다.

서로를 먼산바라기처럼 대하는 선생과 학생 사이라면 더 서글픈 일입니다.

도랑을 지나는 물처럼 잠시 만났다 헤어지면 또 다른 물이 흘러들겠지... 그런

자조적인 푸념을 하는 선생님도 여럿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진 흙탕이 되어도, 그래도 학교는 우리 사회가 기댈

희망의 보루로 지켜내야 합니다. 지치지 말아요. 그 희망이 무너지면 기댈 곳이

없으니까요.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모으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해

당사자들에게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스승의 자애로운 제자 사랑과 스승을 존중하고 따르는 섬김. 백 번의 가르침

보다 한 번의 솔선수범하는 도덕적인 스승.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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