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악일까

이관순의 손편지[191]

by 이관순


사람만 생장 소멸의 생애를 밟는 건 아닙니다. 언어도 생장 소멸의 과정을

지닙니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대략 6천여 개 정도로 추정하는데,

최근엔 매년 이십여 개의 언어가 사라진다고 해요.


언어가 소멸한다는 건 부족이 사라지고 인종이 사라지는 것과 통합니다.

인류는 지난 수 세기를 문명과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침략자 본성의 행태를 드러냈어요.


그 바람에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갔어요.

조금 더 편하게 살려는 인간들의 욕구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밀림이 1년에 서울의 여섯 배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천하고 게을러요. 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이 오르고 부자가

되면 종부터 두고 싶어 하죠. 그 심성엔 천박함이 자리해요. 인류의 조상

아브라함 때 이미 종을 둔 걸 보면, 종의 역사가 사람의 역사입니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문명의 실상은 야만이죠. 여기에 과학의 오만함을

더해 죄악을 잉태합니다. 마지막 금도인 상식에 눈 감아버리고 양심마저

귀를 닫으면, 문명사에는 죄의 피가 흐르기 마련입니다.


1897년 9월 끝날, 로버트 피어리가 지휘한 탐험선 호프호가 뉴욕 항에

들어왔어요. 북극점 정복에 실패한 피어리는 두 가지 선물을 가져옵니다.

하나는 그린란드에 떨어져 있던 운석이고, 또 하나는 살아있는 여섯 명의

에스키모들입니다.


연 이틀간 3만 명의 미국인들이 입장권을 손에 쥐고 신기한 에스키모를

관람하기 위해 밀려들었습니다. 피어리는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으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지요.


실패한 탐험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고 후속 탐험을 위한 모금을 하려면

무언가 이목을 집중시킬 깜짝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느낀 겁니다. 뉴욕에

온 뒤로 피어리는 단 한 번도 에스키모를 돌보지 않았어요.


이들에게 에스키모는 북극점 정복이란 자신의 야망을 채워줄 도구로 밖에

보지 않았고, 다수의 백인들도 에스키모는 하등 인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면 6명의 에스키모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에 살아 있는 인종 표본으로 전시됩니다. 그러다

백인 풍토병인 감기에 감염돼 몇 달 새 네 명이 죽고, 한 명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었어요.


일곱 살 에스키모 소년 미닉(Minik)만 폐렴으로 아버지를 잃고 황량한

도시에 천애고아가 되었지요. 그 후 미닉은 미국 가정에 입양돼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커갑니다.


하지만 청년이 된 미닉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연사 박물관측이

치러준 아버지의 장례식은 가짜였고, 시신은 해부돼 박물관에 진열되었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미닉은 유골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조롱이나 무관심 속에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미닉은 백인사회에 대한 환멸만 키우다가 고향인

그린란드로 돌아갑니다. 고향에 돌아간 미닉은 행복했을까.


12년 동안의 미국 생활로 이미 모국어를 잃은 상태인 데다가 에스키모

생활방식조차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편치 않았어요. 이미 화려한

브로드웨이의 불빛을 본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미닉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방황하던

미닉은 끝내 고향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7년 만에 그토록 혐오했던

미국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마저 철 지난

유행에 지나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떠돌다 벌목장 노동자로 살아가던 미닉은 28세이던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숨을 거둡니다. 2002년 9월 10일 자 내 일기에는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이란 책을 읽고 쓴 글이 있어요.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른 문명의 죄악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가득합니다.

미닉의 짧고 비극적인 삶에 연민이 차오르고,

에스키모인의 시체로 인종 표본을 만든 과학의 오만함에

분노에 차 있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어린 시절에 읽고 기억해온 세계 위인전 속 피어리의

이미지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끌어내릴 수 있을까. 인간 본성은 악일까 선일까.


물음에 물음이 꼬리를 무는 이 순간도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을 정죄하는

날 선 칼날이 무섭게 번쩍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

인간의 역사는 진실하지 못하고 난잡하다는 것이지요.

-글 이관순 소설가/ daumcafe/ lee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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