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받는인물 조각상

이관순의 손편지[220]

by 이관순

핸드 메이드 작품 중에 가장 신비감으로 바라봤던 분야가 조각입니다.

조각가 김세중이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을 세웠을 때 어떻게 저 큰 것을

만들었을까. 신비롭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지요.

내가 다닌 대학 캠퍼스에는 조각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수많은 학생이 오가지만 대부분 무덤덤하게

지나치는데 꼭 한 마디하고 지나가는 친구도 있죠. “쟤 지금 뭐하냐?”

하루는 친구들이 모여 조각상을 보면서 짓궂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어디 알바 자리 없나? 등록금 어쩌지? 그런 얘기로 시시덕대고 있을 때

평소 말이 없던 친구가 “내 팬티 못 봤냐?” 그 말에 모두 빵 터집니다.

그로부터 ‘생각하는 사람’은 ‘내 팬티’로 불리게 됐지요.


흔히 철학적 사유가 신의 영역이라면, 일상적 고뇌는 인간의 영역이라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프랑스 조각가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온몸으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어쩌면 저렇게 잘 형상화했을까.

오른 팔꿈치를 왼 무릎 위에 올리고 턱을 괸 건장한 사내는 온몸 근육이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합니다.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관람객의

시선에 맞도록 두상의 비율을 맞추고, 자세와 근육의 묘사 하나하나까지

그 정교함에 놀라움을 더합니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 지옥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수백 번의 데생과

점토 조각상을 만들고 거대한 목조를 짜 그 위에 점토와 석고를

바른 후 조각을 시작했다고 해요.


부수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2미터 크기 독립상을 완성하고 1904년

작품을 공개합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창조적 의지와

긍지를 단테의 지옥문과 비교해 이렇게 전했지요.


“나는 전혀 다른 ‘생각하는 사람’을 고안해냈다.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주먹을 입가에 댄 채 그는 꿈을 꾼다.

풍요로운 생각들이 천천히 그의 머릿속에서

정교해진다. 그는 더 이상 몽상가가 아니다. 창조자다.”


조각은 자기기만의 환상을 유발합니다. 아테네 조각가 미론의 작품인

‘원반 던지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천년을 두고 한자리에 굳어 있지만,

보는 사람은 우람한 근육의 움직임과 하늘을 가르고 날아간 원반이

초원에 꽂히는 환상을 봅니다.

조각상 스케일로는 미국 ‘큰 바위 얼굴’이 압권입니다. 사우스 다코마주

러시모어 산에서 그 웅장함을 보았습니다. 주차장에서 조각상을 올려다

볼 때 첫인상은 ‘미국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조각가 거츤 보글럼이 1927년 착수하고 아들인 링컨에

의해 1941년 완공됩니다. 보글럼 부자가 14년간 쏟은 정성과 집념이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켰지요. 얼굴 크기만 10층 빌딩 높이에 달하는.

초기에는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등 세 대통령을

조각했다가 뒤에 루스벨트 대통령을 추가했습니다.

황량한 산악 러시모어산 암반에 조각상이 완성되면서 또 하나의 세계

명소가 등장합니다. 가난한 지역경제를 살리고 미국의 위대함을 알리는

곳이 되었지요.


한국에도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이 있어요. 2006년 충북 음성 생극에

문을 열었습니다. 17만 평 대지에 3m 남짓한 화강암 조각상 3천 점이

들어서 있지요. 이중에는 무게가 30톤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집념을 키웠을까?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나이 들어 편히 살지 못하고, 돌에 미쳐 헛돈

쓴다고.” 조각공원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설립자의 말입니다.

설립자 정근희 이사장(음성 현대정신병원)이 1990년 이곳에 병원을

열면서 조각공원을 착상했습니다. 환자들 산책길에 조각 석상을 놓으면

정서적으로 좋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웅대한 꿈에

시동을 건 셈이죠.


조각공원은 이듬해 중국에서 화강암 채석권을 따면서 현지에 공장을 짓고

석공 양성기관을 세워 석상 제작에 나섭니다. 조각공원의 석상은 모두

현지에서 양성한 400명의 숙련공들이 제작해 들여왔습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조각공원과 만납니다. 이제는 외국에도

소문이 나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세월 속에 역사도 풍화됩니다. 2년 전 미국 경찰관의 흑인 가혹행위가

인종 차별 논란에 불을 지폈지요. 논란이 과열되면서 관련 인사의 동상

제거 움직임까지 촉발시켰습니다.


그 바람에 러시 모아의 걸작품 ‘큰 바위 얼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이목이 쏠립니다. 2019년 뉴욕 자연사박물관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확정하면서죠.


인물상의 수난은 우리나라가 더합니다. 국가의 영웅들을 꼬투리 잡아

끌어내리는 일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이래서 역사는 아이러니한 걸까.

동상과 비석을 함부로 세우지 말라던 옛 어른의 말이 또렷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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