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8-13]
문장으로 삶의 시름을 풀어주던 안동 여자. 작가 김서령이 암 투병 끝에
떠난 지 3년입니다. 만난 적은 없어도 문장 결이 고와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온 분이었습니다.
따뜻하고 단아하고 때로는 아련하게 아득하게… 그녀의 문장에는 늘
그리움의 글 향이 배 있었죠. 자신을 ‘생활 칼럼니스트’로 이름하고 평범한
일상에 숨은 세계를 찾아 꼼꼼한 시선으로 담아내곤 했지요.
출간 1년이 지나서야 김서령의 유고 산문집 ‘외로운 사람끼리 배 추적을
먹었다’(푸른역사)를 읽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를 통해 접했던 음식들을
정갈한 문체와 감성으로 풀어놨더군요.
그가 풀어놓은 배추적, 호박전, 쑥국, 취나물, 집장 같은 소박한 우리의
옛 음식에 시선이 꽂힙니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이 있고 그리움이 배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음식이
그녀의 손끝을 거치면서 색과 빛으로 살아나는 이유입니다.
7월 15일, 내일이 어머니 기일인데, 읽는 책이 하필 엄마의 음식이고
그리움입니다. 늦은 밤, 안동의 아낙네들이 배추적을 해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듯 비 오는 창밖을 보다 어머니가 해주던 부추 전을 떠올립니다.
해마다 어머니 기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한 발짝 먼저 움직입니다.
“저녁에 뭘 해 먹지?” 한때 수없이 들은 어머니의 고민입니다. 하지만
때마다 밥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채워 있었지요.
밥상 주 메뉴는 배추와 무였습니다. 고추와 상추에 소스로 된장 한 종지
올리고, 김치를 결 따라 쭉쭉 찢어 밥숟갈 위에 걸치면 그것만으로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졌지요.
길쭉이 쪼갠 무를 씹을 때도 우걱우걱 와삭와삭 소리를 더해야 제 맛이
납니다. 음식의 제 맛은, 씹히는 소리까지 가공하지 않은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조상의 지혜를 어머니를 통해 듣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뛰놀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타 준 황설탕 물 한 대접을 받아서
벌컥벌컥 들이켜던 때의 황홀감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그녀의 유고집
문장은 무심코 잊혀온 내 그리움의 기억들을 줄줄이 소환해 줍니다.
순간순간 경험했던 일들이 열린 오감을 통과하며 영롱한 빛깔과 색으로
어제의 일처럼 되살려 놓습니다. 비 오는 날, 어머니가 부친 부추 전을
찢어 엄마 한 입, 아들 한 입, 서로 입에 넣어주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머니가 세 아들 학비를 벌충하려고 난생처음 이웃 아주머니를 따라
인삼장사를 나갔던 아련한 기억도 있습니다. 집이 인삼 곳으로 유명한
금산이라 가능한 일이었지요.
닷새씩이나 집을 비우고 인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행상에 나섰던
어머니는 이문은 고사하고 터진 입술에 퉁퉁 부은 발을 절룩거리시며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집이 최고다.”라고 말하며 웃으셨습니다.
그날 피곤에 절은 어머니의 삶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픔은 사람을 사무치게 합니다. 그리고 사무침은 사람을 의연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형제처럼. 여름이 오고 아들들이 도시에서 오는
주말이면, 우리 집 들마루에서는 소 잡는 소리가 납니다.
무쇠 식칼을 들이대자 수박이 ‘쩍’ 소리를 내며 붉은 입을 벌리고
갈라집니다. ‘우아- 잘 익었다!’ 그때 형제들이 동시에 내뱉는 탄성은
21세기 문명의 그 어느 소리보다 예찬할 가치가 충분하지요.
어머님 기일이 되면, 바람결처럼 단순하고 순박했던 시절의 그리움에
목이 탈 때가 있습니다. 그리움은 인간의 마음을 열어 주고, 그리움은
시간의 침식을 이겨냅니다.
간식으로 어머니가 쪄낸 감자 한 소반엔 문명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오직 순수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꽉 차 있지요.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과감하게 현대 도시 위에 펼쳐놓은 지난여름의
개봉 영화 ‘트렌짓’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똑같이 반복하여 들려줍니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중 누가 먼저 상대를 잊을까?”
어머니 기일을 앞두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엄마랑 나랑 누가 먼저 잊고
지낼까?” 가슴이 뜨끔해지는 질문을 생각 없이 던져 놓고 눈을 감다가
비로소 깨닫습니다.
먹장구름에 가려있어도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빛난다는 사실을.
땅 위의 사람은 잊고 지내도 저 별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위치를 바꾸지 않는 북극성처럼 오늘도 어머니는 제자리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하십니다. 나를 향해 손짓하고 웃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 맞아, 어머니는 날 잊으신 적이 없어. 잊고 지내온 건 나야.”
세상사에 웃고 울다가 잊으며 잊히며 그러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
오늘따라 어머니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