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관순의 손편지[20-17]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을 경험하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는 달리 죽음을 먼 날의
일로 잊고 살지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전혀 다른 고백이 뒤따르죠.
지인들 모임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사는 게 시들하다” “흥미 없다” 같은 비슷한 말이 오갈 때, 뇌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친구가 호통을 칩니다. “이보게. 난 하루하루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사네. 내가 사는 1분 1초가 기적인 걸 모르면
함부로 말들 하지 말게.”
맞아, ‘앎’이란 경험이란 실체 앞에 허접스러운 것이지요. 단 하루, 한 달,
1년만 더 살았으면……. 가슴에 절절함을 지닌 사람들 얘기는 아가미가
펄떡이는 생선의 가시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내 주변에 아내를 앞세워 보낸 친구가 벌써 서넛입니다. 엊그제 만난
친구도 3년 전 아내를 앞세웠지요. 그래도 잊을 건 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지만, 혼자 넘을 마음의 산은 태산보다 높아 보입니다.
여름에 큰 딸이 마카오로 떠난답니다. 세계적 브랜드 호텔의 이사로
스카우트 제의가 올 때만 해도, ‘내 걱정 말고 네 인생을 살라’고 등을
밀었는데, 막상 날이 잡히니까 마음에 한 줌 바람이 일더랍니다.
63세의 아내를 병마로 보낼 때 그걸 인생이라 살았느냐고, 아쉬운 대로
일흔만 채웠어도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을 거라고 애통해 한 친구였어요.
“그래도 자넨 행복한 줄 알게. 같이 사는 둘째 딸이 있잖아. 혼자 사는
사람들 생각해봐. 그리고 큰딸 속 깊은 것 좀 봐라. 언제든 아버지가
마카오에 오시면 룸을 내주기로 계약서에 명시했다며? 효녀다. 하늘의
아내가 뿌듯해하겠다.” 그제서 친구 얼굴에 미소가 지핍니다.
그건 그렇다면서…….
나이 들면 결국 남는 건 가족뿐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도 자녀가 해외에
사는 게 자랑이 아니라며 헛헛해합니다. 10년 전 대기업 미국 주재원으로
나갈 때만 해도 그분의 자랑이었는데.
세 번이나 주재원 연장 근무를 해온 아들이 연초 귀국 발령을 받고는,
자녀들 교육 문제로 고심하다가 결심을 했답니다.
사표를 내려고 잠시 귀국했을 때만 해도 “형편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라고
이해를 했는데, 최근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떼다 아들 난에 해외 이주로
표기돼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렁이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사별한 지 5년이 됐습니다. 역시 60대에 남편
곁을 떠났지요. 5년간의 병시중 끝이라 좀은 홀가분할 법도 한데
“1년만 더 살았으면”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비원으로 남았습니다.
“떠난 지 3년까진 정말 힘들더라. 5년 되니까 좀 낫기는 해.” 그래도
웃는 얼굴에 그리움이 일렁입니다. 아들과 아파트 앞뒤 동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용문 5일장에 갔던 얘기를 해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지요.
친구는 옛날 고향 장터를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흥정도 하고 물건도
사봅니다. 그러다 시장기를 느끼고 장터에 생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국밥에다 평소 입에도 안 대는 막걸리도 한 병을 주문했답니다.
결국 술은 한 잔도 못 마시고 옆 테이블에 넘겼다가 합석까지 하게
됐다는 겁니다. 연배가 비슷한 구로에서 왔다는 옆자리의 분과는
통성명을 했습니다.
평소 남에게 각박한 소리를 못하는 친구를 알아봤는지 물 만난 고기처럼
연신 말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아들이 한 주에 3만 원을 주면, 이렇게
장날 찾아다니며 술도 한 잔 하고 말벗도 삼는 게 낙이라며 주절주절.
매정하게 끊지 못한 친구는 한 시간 얘기를 듣고 그만 가겠다고 일어서자
같이 가자며 따라 일어선 그와 함께 전철을 탔답니다. 친구가 내리는
덕소역까지 며느리 흉보고, 아들 자랑하고, 한 얘기 또 하는 그를
상대하느라 고역을 치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그러겠나. 자넨 행복한 걸세. 그런 아들
며느리가 어디 있나? 홀아버지 돌보려고 앞 동으로 이사까지 오는, 그런
자식 요즘 없네.” 그러자 친구도 같은 생각이라며 며느리를 칭찬합니다.
그날 친구는 좋은 일을 했습니다. 끝까지 싫은 표정 안 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수양을 넘어 덕을 쌓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태산보다
높은 마음의 산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한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우린
행복한 사람’ 이란 것을. 오늘이 있어서 그렇고, 같이 할 친구가 있고,
함께할 가족이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는 기적 같은
삶을 산 것이니까요.
❝기적은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깨닫고 즐겁게 사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