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기술이 있을까

이관순의 손편지[223]

by 이관순

30대면 더 이상 청춘이 아닙니다. 몸이 먼저 알아요.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늘어나 사람 이름이 입안에서 뱅뱅 돌고, 하려던 일이

무언지 까먹기도 합니다. 세월이 몸의 쇠락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세상에서 먹는 것 중에 나이같이 먹기 싫고 맛도 없는 것이 있을까.

세상사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나 가는 세월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젊은

날엔 가난, 아픔, 상처까지 힘이 됐는데 지금은 두려움이 앞섭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그 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젊은

날엔 내 근심과 아픔을 세월이 치유해 주었는데, 지금은 아픔은 아픔대로

상처는 상처대로 아물지 않고 남아서 덧나기도 하니까요.

이따금 우두커니 앉아 먼 산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불행이 외면한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고, 깎아낸다고 깎여지는 고통이 아닙니다. 희망이나

행복이 필요하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니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세요.


숨 쉬고 있는 지금을 행복해하세요. 날숨 한번 뱉었다 들이쉬지 못하면

나무토막이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름 남기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요.

호적에도 지워질 이름,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그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삶이면 족합니다.


최근 지인의 추천을 받고 영화 한 편을 다운 받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세월과 나이 듦과 삶의 아픈 궤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스틸 엘리스’로 알츠하이머(치매)를 앓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4가지 이유에서죠. 원작에 대한 신뢰, 루게릭

투병 중이던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유작,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줄리안

무어의 연기, 그리고 기존의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한 영화처럼 환자

주변의 고통이 아니라 환자의 변화를 조명한 점입니다.

발음 장애로 병원을 찾았다가 루게릭을 선고받은 리처드 글렛저 감독은

리사 제노바의 원작 소설 ‘스틸 엘리스’를 읽고,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투병 상황에 더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독을, 영화로 만들자고 결심합니다.

섬세한 연기력으로 캐릭터들의 심리를 보여준 줄리어드 무어는 언어학

교수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심도 깊은 내면 연기로 칸과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까지 그랜드슬램을 거머쥔 유일한 여배우가 되었죠.

영화는 아내, 엄마, 교수로 성공한 삶을 살던 엘리스가 한창의 50세에,

희귀성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시작하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질병 앞에 당당히 맞서는 진지한 삶의 태도로 감동을 줍니다.

저명한 언어학자로 완벽한 삶을 살던 그녀가 기억을 잃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낼까. 극한 상황에서도 소중한 기억들과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꿋꿋하게 삶에 임하는 과정은 눈물겹기도 합니다.


매일 조깅하던 곳에서 길을 잃고, 집에선 화장실을 못 찾아 당황합니다.

중요한 약속을 까먹습니다. 영화는 환자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날것

그대로 꼼꼼히 짚어 보입니다.


감독의 투병 경험이 없었다면 담기 어려운 것들이지요.

그녀는 “앞으로의 1년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병과 같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찾습니다. 내가

아는 기술 중에 <성실>이란 것만큼 고도의 기술이 없다면서.

“매일매일 성실이란 기술을 배워요. 기억을 잃는 것은 멍청하고 우스워

보이지만 그건 내가 아닙니다. 나의 병일 뿐입니다. 나는 이 세상의

일부로 여전히 남아 있으려고 애씁니다. 나를 너무 다그치지 않으면서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사는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엘리스처럼 노화나 상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붙잡지

못할 세월이고 먹어야 할 나이면, 잘 보내고 잘 먹는 게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니 늙는다고 한탄을 하지만, 실제는 삶의 정열이

식어질 때 늙습니다.


흐르는 세월이 얼굴에 주름을 늘리는 것은 감내할 수 있는 일이어도,

꿈이나 소망을 잃어버리기 시작할 때, 마음에 주름이 깊게 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절망시키는 건 나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꿈을 버리지는 마세요. 게으르지 말고 끝날까지 ‘성실’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해요. 하루살이도 꿈을 꾸고 주어진 생에 성실을 다합니다.

호수 위를 유영하는 오리 떼가 평화롭게 보이죠? 그러나 물밑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두 발이 있습니다. ‘성실’한 두 다리의 노고가 오리를

물 위로 띄우는 기술입니다.

마음의 주름을 늘리지 마세요. 그 시간에 어떠하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따뜻한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 기억에 저장할까를 생각하세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성실이라는 기술로.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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