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답사 차 안성 죽산으로 천년 사찰 칠장사를 찾았습니다.
임꺽정이 드나들고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 시제를 받았다는 곳입니다.
단청도 않고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드러낸 대웅전에서 받은 인상은
강렬했지만, 그날 충격의 기억은 따로 있었지요.
“저 여자 아직도 앉아 있네.” 경내를 다 돌아보고 내려오는데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아직도 한 여성이 무릎 속에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앞서 사찰로 오를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
계곡 쪽 공터에 놓인, 운전석 문이 활짝 열린 허름한 아반떼 차량부터
마음에 걸렸는데,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바위에 신발을 벗어놓은 채
치렁치렁한 머리로 얼굴을 감싼 여성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자는데 ‘괜한 참견 말자’라는 생각이
나를 말렸습니다. 그래도 길을 내려오면서 몇 번을 뒤돌아보고 괜찮겠지,
자위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은 한쪽에 남았었지요.
사건은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터졌습니다.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날
따라 일찍 귀가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시선이 TV에 꽂히면서 금세 그
여성의 자살 소식임을 알아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로부터 그림자처럼 내 생각을 따라오는 그날의 현장. 내가 한 발짝만
다가섰더라도 끔찍한 일만은 막지 않았을까? 조난당한 생명을 방기한
무거운 죄책감이 거미가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오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극단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 구조의 손길로 별의 순간이 온다는데
그 순간이 하필 내게로 찾아와 그것을 저버리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
셈이죠. 인간의 선의지에 눈을 감은 것입니다.
그곳에 다수의 생각, 다수의 행복에 길들여진 내가 있었습니다. 99마리
양을 두고 잃은 1마리 양을 찾아 나선 성서 속 이야기엔,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어요. 사랑은 모두에게 고루 나눠야 할 필수 가치임을 알고도.
목동과 양을 소재로 한 비슷한 이야기는 근동 지역의 동화책 여러 곳에
나옵니다. 양의 무리를 남겨두고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동의
간절함은 공원에서 사라진 아이를 찾는 엄마의 애절함과 닮았습니다.
계곡과 들판을 돌고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봅니다. 이렇게 생긴
양 한 마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그렇게 며칠을 헤매다 탈진한 목동 앞으로
한 무리 양 떼가 지나갑니다. 목동이 양 떼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무리의 뒤를 쫓던 양 한 마리가 고개를 돌립니다.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거예요. ‘에앵’ 양이 울며 돌아서고, 목동은 양을 향해 달리고.
마침내 양을 끌어안는 목동의 애끓는 정분이 아름답고 눈물겹기도 한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위기 앞에서 다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소수를 쉽게 버립니다.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다수를 생각하는 것이 대의에 부합하므로 소수의
희생에 고개를 돌리지요. 그것이 민주주의 효능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한 사람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많은 사람이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도
같습니다. 현대사회의 공리에 길들여진 학습 효과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위험에 설 때면, 대중을 보지 말고 딱 한 사람과 눈을 맞추라고 합니다.
대중 속의 소수가 되지 말고 일 대 일의 구도를 만들라는 거죠.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면 사람마다 이런저런 후회를 합니다. 그때의
후회는 대부분 대단한 허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미안하고,
더 고마워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다는 일상의 것들입니다.
지난해 봄 나의 행위는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것입니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더 괴롭힙니다. 아예 허물이 크면 무게에
눌려 눈이 멀지만, 작은 허물은 쉽게 기억에서 떠나지 않아요.
할 수 있었는데 놓친 것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했어야만 한 것들,
그런 것들이 회한으로 남습니다. 4월이란 소리에 바위 위 맨발로, 풀어진
머리로 얼굴을 덮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너울너울 지열처럼 춤을 춥니다.
다가가 왜 그러시냐고, 말 좀 하자고, 그래서 사정도 들어보고 위로도
하고, 어쩌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땅히 그랬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를 버리지 못합니다.
지난겨울 끝자락에 폭설이 내리던 밤. 마을 뒷산에서 우지끈 솔가지를
부러뜨리는 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어서 봄이 왔으면 봄바람 한줄기를
그리도 그리워했는데, 어느새 그 봄이 왔습니다.
새들의 힘찬 날갯짓을 보며 사람들은 이봄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희망에 기대설 때 누구에게는 잔인한 봄이었습니다. 4월 13일. 가슴에
살아나는 아픈 기억을 꾹꾹 눌러 밟는 그런 봄으로 말입니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다는 별의 순간. 한 생명이 나를 향해 보낸 조난
신호를 애써 외면했다는 자괴감이 그렇게 마음의 족쇄로 옥좨 올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4월과 씨름을 해야만 이 아픈 기억에서
멀리 떠나 있게 될까.
뜨거워진 대지의 열은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꽃들은 이상기온에 신음
하고, 황사로 가득한 잿빛 하늘엔 누렇게 황달 기운을 띤 태양이,
땅에는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이 힘겨워합니다.
코로나로, 황사로,미세먼지로, 아픈 기억으로, 이래저래 우울한 봄날을 꾸역꾸역
밥을 먹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