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도 꽃이 필까

이관순의 손편지[227]

by 이관순

‘대끝에서 3년 산다’는 말이 있어요. 역경에 처한 사람에게 참고 이겨

나가라는 격려의 뜻입니다. ‘댓 구멍으로 하늘을 본다’는 말은 좁은

안목으로 세상을 사는 편협한 사람을 향한 말 같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풍정을 글과 그림으로

삶의 풍화를 표현했어요. 대나무를 시제로 한 시와 문집엔 눈(雪竹),

비(雨竹), 바람(風竹), 달(竹月)과 짝지어 자연의 기품을 노래했습니다.


풍정 중에도 특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 모습과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깊은 사념을 드러냅니다. 흰 눈을 이고 있는 대숲, 비를 맞는

대숲의 정경을 가슴에 담고, 달빛 아래 일렁이는 대나무 그림자를 보며

많은 정한을 느낍니다.


모함과 탄핵, 삭탈관직이란 비운을 안은 선비들의 유배지엔 사람은 없고

자연이 벗입니다. 70대까지 40년간 정적과의 싸움에서 세 번 실패하고

유배 때마다 윤선도를 맞은 것은 사람이 아닌, 오직 솔, 죽, 달, 물, 돌 등

다섯 친구가 변함없이 그를 위로했습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누가)가 시키며(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고 저러고도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는 ‘대’나 ‘죽’이라는 말을 직설로 쓰지 않고 ‘아닌 것이’라는 물음으로

대를 낯설게 표현해 무관심한 척하면서 은근히 마음을 건네는 서정의 깊은

경지를 드러냈습니다.


대나무가 사람에게 남다른 기품을 느끼게 하는 것은, 뿌리의 힘만으로

꼿꼿하게 자라고 이를 매듭으로 푸른 절개를 완성합니다. 이에 더하여

마음을 비워 높은 절조를 잡는 데 있습니다.


속세의 티끌을 묻지 않는다는 푸른 대나무와 늙은 소나무. 사람들은

고요한 밤에 대를 씻는 바람소리에 속진의 마음을 씻어내고, 비 온 뒤

맑고 서늘한 대 그늘을 거닐며 인생 풍파의 어둠을 걷어냅니다.


삼봉 정도전이 남긴 삼봉집 4권에는 ‘대나무 창(竹窓)’이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에 곁들인 호가 죽창인 이언창 선생의 해설이 겨울 아침

햇살같이 반갑고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죽창에 고상한 지론은 없습니다. 다만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

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맞으며 그 모양이 쇄락합니다.


그리하여 아침이슬, 저녁연기, 낮 그림자 밤소리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목에

접하는 것치고는 한 점 진속의 누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죽창에 앉아 탁자를 정돈하고 향을

피운 다음 글을 읽기도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온갖

생각을 떨쳐버리고 묵묵히 꿇어 앉아서 죽창에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조차 잊기도 합니다.”


삼봉은 이언창의 즐거움이 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얻은 지혜와

슬기를 대에다 의탁하고 스스로를 관조하는 것임을 깨닫고 죽창에게

문장으로 남겨주기를 청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흔들어대는 것이, 속없는 바람이 속 빈 대나무를 흔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 누가 무엇을 탓하리. 그럼에도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기어이 꽃을 피웁니다. 모든 생명이 고난을 거친 후 그렇게

꽃을 피웁니다.


혹시 대나무 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모든 꽃의 사명이 번식에 있다면

대나무에게 꽃 운운함은 이치에 맞지 않겠지요. 대나무는 꽃으로 번식하지

않고 뿌리로 하니까요.


그럼에도 대나무에 꽃이 핍니다.

일생에 단 한 번. 때로는 백 년을

기다려 피기도 한답니다.

사람은 이를 대꽃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대꽃은 슬픈 사연의 꽃입니다. 꽃이 피고 지면서 대나무의 일생도

낙조를 맞으니까요. 하나가 피면 주변 대나무가 함께 일제히 꽃대를

올렸다가 서서히 함께 말라죽습니다.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개화병을

심하게 앓고서요.


대나무가 개화병으로 죽는 것도 운명입니다. 군락을 이루어 수십 년을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았으니 때가 되면 대밭에 토양이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땅 속의 양분이 고갈될 즈음, 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꽃을

피웁니다. 연명을 하려는 최후의 처방인 셈이죠.


지난 11월 강릉 오죽헌에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백년손님이 이 땅에

길조를 가져왔다고 코로나 위협에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강릉 오죽화를

찾아 몰려왔었지요. 대꽃을 만지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이

지극 정성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대꽃이 반길 만큼 아름답지는 않아요. 그보다 귀한 것은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꽃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백 년의 인고 끝에 피우는

꽃이니, 그 갸륵함이, 그 지극한 정성이 귀하고 길(吉)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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