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피부를 벗기듯... 이봄엔 나도

[2] 이관순의 손편지

by 이관순

겨울은 늘 용맹함으로 시작했다가 패잔병처럼 사라집니다. 아직 정월(음력)인 데도 여기저기서 봄의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 없이 바빠지고 있는 것은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싱러운 수액이 오르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는 물기를 머금어야 할 때니까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뿌리의 고단한 헌신에서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혹독한 겨울에도 잠들지 못하고 생명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막식물은 상상을 넘어설 만큼 많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데 비해, 수생식물은 뿌리라 할 것도 없을 만큼 빈약하지요. 콩나물도 물이 넉넉하면 곁뿌리가 적고, 물이 없으면 잔뿌리만 키웁니다.


‘뿌리가 깊어야 가뭄을 타지 않는다.’ 는 말도 있어요. 여기에는 근원이 깊고 튼실해야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는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근본이란 게 있습니다. 개인과 집안, 국가와 민족, 전통과 문화에도 근원이 있는 법이지요. 오죽하면 ‘물 한 모금을 마실 때도 시원을 생각하라(飮水思源)’고 했을까.


식물학자의 말을 빌면 땅 위에 드러난 식물의 잎줄기와 땅 속에 내린 뿌리의 생체량은 엇비슷하다고 합니다. 지상의 풀 한포기, 잘라낸 나무 한 그루의 무게가 지하에 뻗친 원뿌리와 잔뿌리를 합친 것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식물뿌리를 ‘숨겨진 반쪽’ 이라고 했습니다.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 물 위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보면 수면 아래 광맥처럼 뻗혀 있을 뿌리가 궁금해집니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주는 나무 한 그루를 옮기는 데도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나무 이식에는 그만큼 믿음을 줘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생명은 그만큼 연약한 것이니까요. 옮겨 심는 나무가 클수록 새 땅에 적응하는 기간이 길어져 3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옛날, 고향 어른들은 큰 나무를 이식하고 나면 막걸리를 둘레에 흠뻑 뿌렸습니다. 뿌리를 돌보는 토양세균들의 왕성한 번식을 돕기 위해서였지요. 또, 원래 자랐던 곳의 흙을 떠와 섞어주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토양세균과 더불어 새 땅에서 잘 지내게 해주려는 정성을 담은 것이지요.


봄기운이 산야의 곳곳으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에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春不耕種秋後悔)”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진실과 사실은 달리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내 인생의 좌표를 짚어보니 봄에서는 이미 멀리 떠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올해도 텃밭을 작은 수도장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언 땅을 뒤집고 드러난 속살에 봄볕을 쬐는 일부터 시작하자. 어떤 향수가 흙냄새만 한 것이 있을까. 마른 마음밭(心田)에도 생기를 불어넣고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매번 같은 패턴으로 피부를 벗지만 새로워지는 뱀처럼, 나도 낡은 옷을 벗고 새 노래로 봄을 맞으리라. 텃밭에다, 심전에다, 씨앗을 뿌리면서 한없이 봄 길을 걸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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