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족한가 늘 넉넉한가

이관순의 손편지[246]

by 이관순

사람들은 물이 찰랑찰랑한 컵을 받아놓고 다른 생각을 해요. 어떤 이는

이만 됐다 생각하고, 누구는 조금만 더를 생각합니다. 컵에 물이 넘치고

아니고는 물 한 방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인식은 이처럼

다릅니다. 하나의 똑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


많은 걸 갖고도 늘 부족한 사람이 있고요, 모든 것을 잃어도 아직 남은

게 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행불행의 출발점이 됩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넉넉함을 갖는 사람을 앞서지 못합니다.


넉넉함과 부족함, 이 모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이 말에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을

담았어요. 모든 일에 마음 가짐이 중요함을 이릅니다.


진리를 말하면서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잘 나가던

권좌에서 파직을 당하고 시골로 낙향해야 하는 30대의 젊은 선비가

있다면 그 심정이 오죽할까.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한탄스러울까.


조선 중종 때에 서른네 살의 사재 김정국(思齋 金正國)이 조정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기묘사화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이 따라 붙었지요.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승지 등의 벼슬을 지내며 승승장구하던 젊은

그가 갈 곳은 낙향뿐이었습니다. 고향인 경기도 고양군 망동리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를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습니다.


‘팔여’는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명예, 권세 다 잃고 녹봉까지

끊긴 처지에 자칭 ‘팔여’라고 부르니 좀 억지스럽기도 하고 수사치고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하루는 그가 낙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가 먼길을 찾아왔습니다. 친구

또한 팔여라는 호가 좀은 생뚱맞아 보였는지 그 뜻을 물었어요. 그러자

조기 은퇴한 젊은 정객의 입에서 시 한 수가 나옵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듯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히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봄꽃과 가을달빛을 넉넉하게 보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雪)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이 시 한 수로 심상을 풀어내자 이에 친구가 즉석에서 화답을

합니다. 친구의 내공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름하여 ‘팔부족(八不足)’

이라는 시 한 수를 지어 읊습니다.


“세상엔 반대로 사는 사람도 많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 다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이스라엘 잠언에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극복하는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해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불경에는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에 먼지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모든 게 마음의 문제입니다.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탄식도 많았던

올해가 벌써 절반이 지납니다. 하지만 아직 쓰지 않은 시간이 절반이나

남았으니 팔여라는 희망가 한가락이 더 어울리겠지요.


찰랑찰랑한 물컵이 넘치고 말고는 한방울 물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없고도 한끝에 공존합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 누구는

원망이 되고 다른 누구는 감사가 됩니다.


부족한가? 넉넉한가? 이제는 내가 묻고 내가 답할 차례입니다.

나는 늘 모든 걸 갖고도 부족해 하지 않았던가? 많은 것을 잃었다고

여유마저 잃지는 않았던가?


나만이 그 대답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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