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48]
사람은 다쳐봐야 조심하고,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문제만큼 큰 관심사도 없지요. 코로나로 갇힌 일상이 길어
지면서 저마다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하는데 공을 들입니다.
계획을 세워 책 읽기, 외국어 공부, 컴퓨터로 유용한 정보 찾기 등 뭔가
배우는 시간으로 채우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우리의 배움은
‘읽는 것 10%, 듣는 것 20%, 보는 것 30%로 채워진다’고 해요.
결국 보고, 듣고, 읽는 게 전체 배움의 50%인 셈입니다.
코로나로 일상이 갇히면서 노년층 글쓰기가 왕성해졌습니다. 일본에는
베스트셀러를 쓴 노년층 작가도 여럿 나왔지요. 담담하게 담아내는 삶의
진솔한 경험이 독자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죽지 마라 나의 일상’을 쓴 76세의 할머니 미나미 가즈코도 그중 한
사람이죠. 한 살 위인 남편과 단 둘이 살면서 여성 공학자로 활동적인
삶을 살다가 64세 때 허리를 크게 다치면서 늙음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노화에 따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갈지, 무엇이
지혜이고 행복인지를 달라지는 일상을 통해 확인하고 살갑게 글로
버무려놓았습니다. 우리도 그러듯 “60대의 늙음과 70대 늙음은 확연히
다르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이를 체득하면 행복의 정의도 달라집니다. 예전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생활의 연속”을 행복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행복의 정의부터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하루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이 지금의 나로서는 가장 큰 행복이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한다. 어제 할 수 있었으니까 오늘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만의 하나 어제 할 수 있던 일을
오늘 하지 못하게 되면? 그래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바람이 일상의 작은 것에 쏠려 있지요. 삶의 바른 자세는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생각합니다. 그중에 운동만 한 것이 없다며
집안일에 열심을 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습니다.
나이가 들면 옷 입기도 운동입니다. 그녀는 내 힘으로 옷을 벗고 입을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니 좀 더 오래 그러한 날이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늘 사람과 함께 하려고 애쓴답니다.
오랜 친구와의 통화는 심신이 약해진 노인에게 쓸쓸함을 달래주는 좋은
시간이지요. 사람을 만날 때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힘씁니다.
내 노력에 따라 몇 번의 만남이 더 주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집 근처에 단골 찻집을 마련하라고 권합니다. 찻집을 갈 때도 늘 다니는
길보다 좀 낯선 골목이나 돌아가는 길을 알아두면 좋다고 했어요. 작은
변화가 노인의 삶에 활력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와 교류가 없는 고령자에게 단골 찻집이 있으면 좋다는군요.
젊은 종업원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차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때론 즐거움이 됩니다.
마흔 다섯 미혼 여성이 이 책을 다 읽고 문득 엄마에게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음에 대비하는 요령 같아서 읽으시면 좋겠다고.
엄마도 허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기에 더욱.
그런데 막상 책을 보내려 하자 친구들이 반대합니다. “엄마의 노화가
명백한 사실이라 해도, 엄마가 늙었으니 이런 책을 읽어라, 권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라고 했어요.
지금도 소녀시절 감상이 남은 엄마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결국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은 엄마가 아닌 딸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나름 자신의 동안(童顔)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오래 만에 만난 친구가 한다는 말이 “너도 별 수 없네. 나이는
속일 수 없구나. 탱탱한 네 얼굴 부러웠는데….” 지금까지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던 그녀에게 친구의 말은 상처가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한 참을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40대 여자를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다 다른 말로 자신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그래도 넌 남들보다 예쁘게 늙을 거야. 곱게.”
여자는 나이가 들면서 작은 말 한마디에 얼굴에 생기가 돌고, 풀이 죽어
한숨을 내쉬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보내려고 했다가 화장대 앞에 놓은
책이 눈에 밉상으로 보입니다. 책 제목부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늙지 마라 나의 일상’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다, 좀 센스 있게 달지 못
할까. 애먼 책을 탓하더니 메모지에 끼적인다는 것이 이렇습니다.
시들지 마라 나의 일상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