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98]
세상에는 향기를 내는 사람과 악취를 내는 두 부류의 인생이 삽니다.
‘사람 같은 사람’과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인간’은 뜻은 같아도 용례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집니다.
“저,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라고 말할 때는 인간성이 별로인 부정적
이미지를 전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 마음씨는 비단결이야!”라고 할 때
‘사람’은 호감과 긍정의 이미지를 전합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의좋은 형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이 돼 벼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나란히 볏단을 쌓아
노적가리를 만들었습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볏가리가 빈약해 보입니다. 그날 밤, 형은 가난한
아우 형편을 헤아려 자신의 볏단 일부를 동생의 가리로 옮겨 놓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은 아우가 식솔 많은 형을 걱정해 볏단을 옮기지요.
그렇게 오고 가는 사이, 형과 아우는 줄었어야 할 볏단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의문을 키우던 형제는 보름달이 뜬 밤에
비로소 의문이 풀립니다.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가난했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인생은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만드는 것이 다 어디서 시작될까?
하나 같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례자는 딱 한 가지만 당부합니다. 신혼부부가 오늘 맞는 첫날
밤을 우리말로 ‘꽃잠’이라고 부릅니다. 신혼 초야를 ‘꽃이 잠자는 시간’
으로 표현한 우리말이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습니까?
두 사람은 오늘 꽃잠을 자면서 이 한 가지를 다짐했으면 합니다. 배우
김보성이 외친 유명한 말인데, 큰소리로 내 말을 따라 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 부부 의리를 지키며 살자’. 한 번 더 크게! 네, 아주 잘했습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한완석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붓글씨로
큼직하게 ‘의리를 지키자’라는 문구를 써서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노 목사의 눈에 세상이 오죽했으면 유언처럼 당부한
말이 의리였을까.
그만큼 세상에 의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의리를 빼면
시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리가 밥
먹여 주나?’로 험악해졌습니다.
의리란 ‘사람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갖춰야 할 가치와 덕목이 이 말에 몽땅 녹아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이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을 때입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맛이 있어 좋았다고 옛날을 회상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엔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대는 동물 세계만 남습니다.
‘사람’은 없고 욕망으로 충혈된 ‘인간’들로 넘쳐납니다. 이웃 사이 의리가
깨지더니, 친구 간에 의리가 무너졌다고 탄식합니다.
급기야는 형제간, 부부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를 저버렸다는
서글픈 소식이 들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 어떤 교훈보다 필요한 것이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삶에 의리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 지켜야 할
의무 중 으뜸으로 삼을 게 의리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의리를 다하고,
친구 사이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의리가 앞서야 합니다.
세상을 요령 있게 사는 것도 지혜이겠으나, 의리 하나만큼은 우직하게
지키는 사람이 고결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풍성하게 하려면,
돈에 앞서 의리를 지키고 가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향기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리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인간적 풍미에서 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리는 말로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도 사업도 결국은 모두가 마음의 문제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삶을 다잡고 살면,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다음 세 가지 마음입니다.
⓵ 初心을 지키는 신실한 마음(眞心)
⓶ 童心과 같은 깨끗한 마음 (淸心)
⓷ 熱과 誠을 다하는 마음 (誠心)
이 세 마음을 끝까지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부가 세상에서 존중받으며 복 되게 사는 길이고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며 사는 길입니다.
두 사람은 오늘 당부한 3가지 마음, 즉 ‘三心’을 잘 닦고 소중히 지켜
‘의리 있는 가정, 의리 있는 부부 가정’로 백년해로하면서 만복의 기쁨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지난 4월, 5촌 조카딸 결혼식 주례를 하면서 당부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