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서품을 받아서 한 성당의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비단 보자기로 싼 작은 상자를 내밉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조용한 시간에 풀어보라고 이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참을 잊고 지내온 신부는
사제관 한쪽에 놓아둔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상자 안엔
누렇게 바랜 아주 작은 배내옷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속에 어머니 편지가 곱게 접혀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가 있더라도
늘 기억하라는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예전엔 나도 한없이 어리고 작았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낮은 신부님이
되세요. 어미도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라는 글입니다.
편지를 읽던 신부님의 가슴도 뜨거워졌겠지만, 배냇저고리라는 말에 내
가슴도 뭉클했습니다. 한없이 여리고 연약한 나를 감싸주었던,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옷.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어머니의 사랑의 언어가 숨어 있겠습니까?
겸손해라. 온유해라. 사랑하고 섬겨라. 그때를 기억하라... 모든 언어가
하나가 되어 가리키는 곳은 ‘낮은 곳’입니다.
배내옷에는 세상의 어떤 선물과도 견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제가 되어 광야로 떠나는 아들에게 사랑의 가늠자
하나를 선물한 것입니다.
뜨거움, 기쁨, 환희, 눈부심,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던 사연을 마주한
지가 언제인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모든 걸 외면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뒤만 보며 사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누구 같이’ 살고 싶다던 그 많은 멘토들, 롤모델은 어디로 다 보내고
툇마루에 드리우는 저녁 그림자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6월의 푸른 잎새들 사이로 나를 떠올립니다.
나도 어딘가에 묻어둔 어머니가 지어 주신 배냇저고리를 담은 상자를
꺼내어 보자기를 풀고 가슴에 품고 싶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2년.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날에, 마음에
그러한 갈증을 느낍니다.
추기경은 어머니 기도대로 일생을 배내옷을 품고 산 분입니다. 47세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일생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면서,
늘 넉넉한 품으로 핍박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소리를 내던 분이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의 마음을 심어준 분입니다. 19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을 때 선택한 성구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였고, 세상에
남기고 간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김수환 추기경’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미리 쓴 유서가 있습니다. 1971년 2월 21일 밤이라고 쓴 사무용지
한 장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유서엔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사랑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의 부족한 사랑을 용서해 주십시오….”
열정으로 가득한 마흔아홉 나이에, 유서부터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생을 통한 추기경의 고백이고, 다짐이었을 것입니다. 가슴에 품은
빛바랜 배내옷의 가르침 대로.
추기경은 잘못된 정치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정권의 수배를
받은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에게 말합니다.
“나를 넘고 지나가라. 그러면 뒤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또 넘어가면
뒤엔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준엄하게 불의를 꾸짖는 어른이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TV를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 세상에!” “추기경님이 어떻게!”
TV 속에서 대중가요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놀라면서도 입은 웃었습니다. 추기경의 소박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남자라는 소탈한 모습에 마음 뭉클함을 느끼면서.
추기경은 종교의 편 가르기를 경계했습니다.
구원이라는 명제 앞에 종교는 서로가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 했습니다.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화합의 아름다움을 보였습니다.
촛불, 반미시위 등을 둘러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이 공격을 받던
2004년 때입니다.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나는 바꿔가는 보수(補修)”라고 뼈 있는 유머로 답했지요.
이태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깜짝 선언도 합니다. “나도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이고, 지역구는 전국구입니다.” 바보 추기경의 유머는 늘
잔잔한 깨달음을 동반했습니다.
거칠고 서걱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낮은 자리를 찾아다닌 김수환 추기경.
‘내 탓입니다’를 선창해 사람들마다 자동차 뒷 유리에 스티커를 달게 한
그분의 따뜻한 리더십이 선연합니다.
아픔 있는 자에게는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위로하고,
젊은이에겐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라고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고단한 삶으로 방황하며 길을 묻는 자에게는 ‘인간의 길이란 어떻게
하면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냐에 있습니다.”라며 다독였지요.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