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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 노을빛 식탁의 축제

18-17

by 이관순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골드러시를 따라 미 서부로 향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공자는 행복을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행복은 없다’라고 명료하게 이르고, ‘인생에는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공자가 말하는 행복은 눈이 혹할 보석 같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바위 밑, 은밀한 곳이나 화려한 샹들리에 속에 숨겨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 속의 그 사소한 것들, 그 속에 흐르고 있음을 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행복은 더 이상 파랑새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닌, 바로 우리의 바쁜 일상 속에 스쳐가는 것이다. 매일 우물에 나가 물을 길어 올리듯 행복도 기쁨도 일상이란 우물에서 길어 올려야 내 것이 되고, 우물은 마르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외롭다. 돌아보니 그 많고 아름답던 내 일상들, 우주의 어느 시간보다도 값진 것들이 허공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되돌릴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으니 쓸쓸한 것이다. 아들 손자 자식들로 들썩이던 식탁은 소산 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르기 십상이다. 전화도 오고 주말이면 찾아주니 반갑기도 했는데, 그마저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가깝게 살던 막내마저 지난해 본사가 이전한 진주로 내려갔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옛말이 떠오른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말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이치가 한 획도 틀리는 게 없다. 형제간의 소통도 예전 같지 않다. 통화를 해도 쉬 대화거리가 궁해 진다. 전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면서 풍성할 텐데, 빈 둥지나 끼고 사니 형님이나 아우나 나눌 것은 그저 건강 걱정이나 해주면 끝이다.


흉허물이 지내는 후배와 만났다. 슬하에 두 딸이 있는데 공부를 잘해 둘 다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삶의 터전을 닦고 있다고 했다. 큰 딸은 사위와 함께 독일에서 학위를 따고 눌러앉은 지 11년째인데, 꿈인 대학 정교수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넘을 고개가 여럿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둘째는 스위스에 있는 유엔 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은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데 사는 것이 생각만큼 삼빡하지는 못한 모양 같았다. 특히 코로나가 전 유럽을 휩쓸면서 선진국이란 유럽이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료시설이나 제도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같으면 응급실로 실어갈 상황들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고, 죽어 나갈 정도가 아니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혼이 난 딸은 한국으로 돌아올 궁리를 한다고 전해주었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자식들 얘기가 격의 없이 오가게 마련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따라 미국과 일본에 둥지를 튼 자식 생각으로 가득 찬다. 지난번 통화에서 본사 근무명을 받은 아들이 손자 교육문제로 고민 끝에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쉬엄쉬엄 새 직장을 찾겠다고 여유를 보였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있다. 오늘도 아들 걱정하다 맺는말은 똑같았다.

“알아서 잘하겠지.”

내일은 손자 녀석이 화상통화라도 줄려나? 기대를 갖다가 주춤하게 된다.

“그래, 이번 주는 시험이라고 했지. 할아비가 깜박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서 생각을 접었다.


다시 생각은 딸네를 향했다. 일본에 있는 둘째는 지난 통화에서 아이 교육이 힘들다고 넋두리를 하던데…. 일본은 우리 대학 입시만큼 중학교 입시가 지옥문이라고 했다. 중학교의 관문이 명문대로 이어지는 관문이 될 수 있다니 6학년짜리 외손녀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이다.

“얘야, 어쩌겠니. 각오하고 살아야지.”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이 한눈에 보여도 이젠 도와줄 힘이 없구나. 그저 잘 되길 기도할 뿐이다. 하루 삼시 세끼, 잠 잘 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미국과 일본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한다. 제 둥지로 날아간 자녀들과 만든 옛 추억이나 더듬을 뿐, 그렇다고 부모가 돼 할아비가 돼 넋두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제 살기도 바쁜 자식들에게 알려서 괜한 걱정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인생이 거쳐야 할 여정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 명상에 잠기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늘 아쉽고, 부족하고, 늘 그리움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그래도 남은 인생이 있고 걸어야 할 길이 있고 일상이 이어지는 한, 희망이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럴 때마다 간절해지는 것은 하늘의 은총이다. 그 분만이 내 남은 여생에 삶의 무늬를 함께 짜 주실 분이다. 소산 한 식탁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하면 반겨 주신다.


성경을 펴면 말씀이 두런두런 대화를 걸어온다. 예전에 몰랐던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이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식탁의 축제는 흩어진 지 오래여도, 식탁의 감사는 오늘도 노을만큼 아름답다. 저녁 하늘이 노을에 젖는 것은 내일 아침이 있다는 예시이다. 특별한 것은 없더라도 내일이란 것에 기대를 건다. 혹시 모를 일. 생각지 않은 귀한 손님이라도, 전화라도 올지 모를 테니까.


오늘도 붉게 핀 창밖 노을이 식탁으로 나를 찾아와 주었다. 사랑과 그리움이 절은 식탁의 빈 의자들. 아내마저 저세상으로 떠난 뒤로는 가족들의 기억이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재잘대는 아이들이 있고, 웃음이 있고, 두런두런 대화가 꽃을 피우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소산 할 수가 없다. 오늘따라 탁자와 의자들이 왜 그렇게 낡고 초라해 보이는지…. 늙은 주인을 닮은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아내가 놓고 간 그대로인 가전제품 하며 가재도구들도 주인처럼 가물거릴 때가 있다. 전등 스위치는 한 번 눌러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접촉이 나쁜지 두세 번씩 껐다 켰다를 해야 한다. 그래도 가족들의 손떼가 묻은 것을 새것으로 바꿀 생각은 없다. 부서지지만 말고 평생 친구가 돼 주기를 바라고 있다.


커피 한 잔 탁자 위에 놓고 고 장영희 교수가 남긴 ‘영미시 산책’을 폈다. 타고난 장애와 세 번의 암 투병에도 삶의 희망을 노래하던 그녀의 영미시 해설은, 언제 읽어도 기분을 맑게 해 준다.

그녀가 자신의 장애를 딛고 살았듯이 우리는 모두 저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장애는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있으니까. 그녀가 좋아한 월트 휘트먼의 시 ‘나의 노래’가 이젠 나의 노래가 되었다.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내 지팡이에 기대 바라볼 때

내 상처들은 검푸르게 변한다… ❞


-월트 휘트먼의 시 ‘나의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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