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
올 들어 유난히 사랑했던 분들이 차례로 이 땅을 버리셨다. 그것도 모든 나무들이 힘을 다해 푸른 생명을 풀어내는 4월에, 세상을 등졌다는 부음은 생명의 부활로서가 아닌 소멸로서의 ‘잔인한 4월’을 반추하게 한다. “애 낳으면 기저귀 가는 엄마들만 보인다더니, 나이가 드니 떠나는 사람만 보인다더라”라는 글귀에도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니 ‘생과 사’는 같은 길에 서 있고, 분리할 수 없는 쌍태임에 틀림없다.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목련이 지고 있는 아파트 정문에서 전화를 받았다. 청춘의 사랑과 아픔을 서로 싸매 주고 아파했던 해묵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치받는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치매로 모시기 어려워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산길을 내려오다가 개울에 주저앉아 통곡했다고 한다. ‘이것이 ‘고려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불처럼 가슴에서 타오르더라는 것이다.
“나 지금 어머니 고려장 하고 돌아온다. 불효 막심한 자식이지.”
자책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나도 가슴이 먹먹해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 어머니는 친구의 어머니만이 아니셨다. 대학시절 하숙 생활로 늘 배고파할 때, 따뜻한 흰쌀밥을 밥그릇에 고봉으로 얹어 배불리 먹이셨던 사랑과 인자가 넘치는 나의 어머니이기도 한 분이셨다.
“그래 힘든 결정을 했구나.”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더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친구의 모습이 한 동안 어른거렸다. 화려한 꽃철을 ‘고려장’이란 슬픈 어휘로 채색한 친구의 말이 가슴을 그리도 시리게 했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老馬識途)’라는 문장이 있다. 옛 적부터 전해지는 ‘고려장(高麗葬)’ 풍습과도 연관된 이야기다. 아들이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심정이 어땠을까?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넘어 숲길을 찾아서 가는, 어머니와 아들이 마지막 걷는 길에는 모자간의 곡진한 사랑이 여울져 흘렀을 것이다. 끝내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자 노모가 일러준다. “아들아, 내려갈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해 두었다”라고.
노모의 사랑과 지혜가 와락 눈물을 쏟게 한 슬프고도 아픈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시인 김형영이 ‘따뜻한 봄날’로 시를 썼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오래도록 내 기억을 맴돌던 시였는 데 오늘은 친구를 생각하며 떠올렸다. 소리꾼 장사익이 한 맺힌 가락으로 풀어낸 ‘꽃구경’의 노랫말로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이다.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을 뿐, 효자는 없다. 사랑으로 견줄 때 그 이상의 사랑이란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5월을 시작하는 날,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요양원에 모신 지 딱 보름만이다. 마음이 많이 아파왔다. 그 보름을 더 못 참아서, 불효 막심한 죄를 저질렀다고 친구는 얼마나 탄식해할까. 그의 아픔이 전류를 타고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손을 잡고 아무런 위로를 전하지 못했다. 그저 ‘안타깝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을 잊었다. 발인을 마친 후, 장지인 충북 제천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 동안 창밖으로 5월의 눈부신 신록이 흘러갔다. 상념에 젖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차창으로 줄지어 날 따라오던 산이며 숲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그러듯, 모든 것은 잠시 스쳐갈 뿐이다. 세상도 세월도…. 낯선 광야에 덩그마니 홀로 버려진 심정이었다.
친구가 한 줌 재로 남으신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앞장서 걸었다. 우리 나이로 아흔여섯을 사셨다. 우리 친구들 어머니 가운데 맨 마지막을 장식한 장수하신 어머니다. 그래서 친구를 효자라고 칭찬했고, 잘 모시라고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물었던 어머니였다.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입에 올리던 ‘어머니’는 더 이상 부를 대상을 잃었다.
친구의 뒤를 따라 키 낮은 봉분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갔다. 한 발, 두 발... 발걸음이 한참을 더할 때, 동트는 새벽빛 같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상념 속으로 잉크처럼 번져왔다. 그리고 명징하게 살아나는 가슴의 말을 들었다.
“그래, 지금도 난 무겁게 살고 있구나. 손 놓으면 큰일 날 줄 알고... 훌훌 털고 빈손으로 가는 것도 모르고.”
마치 빈 몸 하나로 조촐히 살다 가는 길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것 같았다.
멀지도 않은, 오월의 어진 바람이 불던 그날, 너울져간 친구의 전화 목소리가 이 밤에 또렷이 살아났다. 고려장 떠나는 길목에서 나누는 모자간의 극진한 사랑이, 5월의 못난 자식들 가슴에 그리움을 쌓이게 했다. 5월은 그런 달인가 보다. 장사익이 숲길에서 모자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를 구성지게 읊는 대사가 떠오른다. 그 대사가 예삿일처럼 들리질 않았다.
“엄니 뭐하신데유?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유?”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