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犬)의 세월

이관순의 손편지[325] 22. 12. 12(월)

by 이관순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다 흠칫 긴장할 때가 있었다. ‘개조심!’ 대문에 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글이나 표지판을 보면 금방 맹견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개조심!’ ‘개 있으니 조심하세요’처럼 얌전한 문구도 있지만, 더러는 투견으로 단련된 으스스한 개를 떠올리게 하는 ‘맹견 주의!’ ‘사나운 불도그 조심!’ 같은 섬뜩한 팻말도 있다.


그것이 도둑 같은 불청객을 차단하는 ‘엄포용’ ‘방범용’ 임을 철이 들어서 알았다. ‘맹견 주의’라고 대문에 써 붙인 친척집에 삼촌 등 뒤에 붙어 가슴 조이며 들어갔다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오는 강아지를 보고 말이다. 그로부터 ‘맹견 좋아하네.’ ‘우리 집에 강아지 있어요’라고 비아냥대는 버릇이 생겼다.


라틴어의 ‘카베 카넴(cave canem)’도 ‘개조심’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 로마의 저택 현관 벽에는 쇠사슬에 매인 사나운 맹견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 있고, 그 옆에다 ‘Cave Canem’이라는 경고문을 써놓았다. 화산 폭발로 묻힌 이태리 남부 나폴리만의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 사납게 으르렁대는 개를 모자이크 한 장식이 나온 걸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와 사람의 친소는 소만큼 친밀한 식구의 반열에 서 있다.


대문 옆 판잣집에서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던져주는 먹다 남은 밥이나 감지덕지 꼬리를 흔들며 먹던 개 팔자가 요즘처럼 활짝 핀 세상도 없을 것이다. 개들이 안방으로 납시고, 사람도 못 받는 호의호식 하며 건강 캐어를 받는 온갖 호사를 누리는 개의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상놈은 상놈인 것이, 아직도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개는 멸시 천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개자식’ ‘개차반’ ‘개놈’ ‘개소리’ ‘개뼈다귀 같은 소리’ ‘개 풀 먹는 소리’ 등 천박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비속어에는 여전히 개를 들먹이는 말로 차고 넘치니까….


한때는 개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곳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의 모란시장. 많을 때는 1년에 8만 마리까지 판매됐다는 원조 개 시장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도축시설이 있던 이곳은 끈질긴 동물학대와 혐오 논란을 부르다가 2016년 마침내 시설 철거에 합의를 했다. 당시 성남시장은 “누구도 해결 못한 50년 숙제를 이재명이 해결했다”라고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개고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시장에선 개고기가 버젓이 팔리고 있으니까.


얼마 전 성남에 갔다가 모란시장에서 옛 친지를 만났다. 근 20년 만의 만남인데도, 옛 단골손님과 식당 주인 사이엔 데면데면함 없이 금방 옛 친분이 살아났다. 그는 40년을 모란시장에서 보신탕을 끓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각계의 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할 만큼 상술이 좋은 데다 성품까지 화끈해서 모두가 좋아한 ‘개 사장님’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을 운영한다는 그를 따라 모란시장 가축 코너를 돌며 개 시장의 ‘흥망사(史)’를 들었다.


기다랗게 뻗힌 길 양 쪽으로 보신탕이나 건강원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곳이 아직도 20곳 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업 중인 곳은 찾기 어려웠다. 붐빌 시간인데도 식당엔 빈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냉장고엔 도축한 개나 염소가 진열돼 있지만, 쇠락한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고기나 탕을 판매하는 식당과 개소주 같은 약탕을 전문으로 하는 업소로 전문화를 꾀했다곤 하나, 나아진 것은 없어 보였다.


6년 전 성남시는 상인회와 업무협약을 맺고도 개고기 판매 자체는 막지 못했다. 상인들이 ‘개를 가두거나 도살 행위 근절’이란 조항을 비집고 외부에서 도축된 고기를 가져다 파는 데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물길을 막으면 새 물길이 나는 이치이고, 전략이 있으면 대응이 있는 법이다. 오히려 시(市)에 대한 상인들 감정만 곱지 않게 만들었다. “서로가 적당 적당 눈 감은 거야. 혐오시설 철거 대신 영업 행위는 인정한 꼴이니까. 나 같이 업종 전환 못하면 어떡해 생업인데 해야지.”


한 때 모란 시장은 ‘개도 수표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만큼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개고기 수요는 쪼그라들고 매출은 토막의 토막이 났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뚝 끊긴 건 아니었다. 반가운 대체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남아 건설 노동자들이 환영받는 고객이요. 어디서 듣고는 몸보신하겠다고 와요. 저들이 손님 될 줄 누가 알았겠소?”


반가운 사람은 또 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노인들이다. 일종의 향수일까?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충청에서도 보양식 한 그릇 먹자고 여길 찾아온단다. 빈궁한 시절, 반색을 하며 먹었던 개고기 식습관이 관성적으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한 번 박인 식습관은 평생 따라 다니는 법이니까. 마침 식당을 나온 노인 세 분이 불콰한 얼굴로 우리를 향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세월을 비껴가는 장사가 있나요. 개고기 팔아서 아들 딸 공부시키고 다 결혼시키며 살았는데 이걸 막으니 삶의 터전만 날린 거지.” 푹푹 탄식을 고아냈다. 그날 나는 그의 입심에 말려 두 시간을 모란시장에서 보냈다. 식당을 접고 편의점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는 그는 아직도 옛 영화가 그리운 모양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그가 한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백정 소리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는 맛이 있었는데, 시위꾼들이 가게 앞에 몰려와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외칠 때, 억장이 무너집디다. 다음 날로 때려치운 거요.” 주름진 얼굴이 실룩거렸다. 가는 세월 앞에 무엇인들 남아날까. 쇠락한 모란시장 풍경도 그중 하나였다. 테이블마다 북적이던 사람들, 1.4 후퇴 때 내려와 평생을 이곳에 묻었다는 경상도 아주머니의 걸쭉한 욕설도 한 때는 모란시장의 서정이었는데…. 그 시절의 한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이 깃발처럼 흔들린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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