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의 추억
신분당선 운행으로 산행코스가 청계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청계산입구역에
내려 화장실에 들르면 한마디씩 구시렁댑니다. 전철역 화장실이 사치하다는
생각에서죠. 고속도로휴게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국하면 화장실에
‘엄지척’하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답니다.
화장실 콤플렉스는 아닙니다. ‘그때를 아십니까?’ 에서 보듯 ‘뒷간‘ ’변소‘로
불렸던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은 전설 속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마다
동네 공중변소 앞에 줄을 서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테니까요.
겨울이면 똥탑을 쌓고, 똥통에 물이 고이면 한 덩이 눌 때마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야 했던 기막힌 사연들...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기억들입니다.
누구도 그때를 탓하지 않습니다. 좋던 싫던 추억은 그리운 것이니까요.
뒷간에서 변소로, 다시 화장실로 진화하면서 공중화장실은 이제 전철역
화장실이 대신합니다. 냉온수가 나오고 비누, 건조기가 있고 칸칸이 화장지도
비치했습니다. 가히 세계 화장실문화 선도국가라 할 만 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외갓집 추억은 뒷간에서 시작됩니다. 방학 때마다 외가에
가는 일은 설렘이었지만 화장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아이가 똥독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은 후로는 고민이 더 깊어졌지요.
울타리 구석의 위치도 싫지만, 뒷간마다 귀신이 있다는 외삼촌 얘기가 있은
뒤로 밤에 용변 보는 일은 공포였지요. 촛불을 든 외할머니가 앞서지만 뒷간에
앉는 일부터는 내 몫입니다. 앉기 무섭게 코부터 틀어막지요. “할머니?” “오야,
예 있다. 잘 보래” 중간 중간 할머니를 불러 무서움을 달랩니다.
철이 들어서야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둬야 한다.” ”똥은 꼭 집에 와서 누라“는
이유와 뒷간의 역할을 알게 됐지요. 똥은 단순한 배설물이 아닌 농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농촌의 귀한 자원임을.
뒷간의 ‘뒤’는 방위로 북녘입니다. 북녘은 어둡고 음습해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습니다. 뒷간에는 심술이 고약한 뒷간귀신(廁間神)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화장실 고충은 컸지요. 설상가상으로 설사까지 겹친 밤이면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고충이 요강을 부추겼습니다. 뼈대 있는 양반집은 요강을 전담하는
‘요강담사리’라는 종을 따로 두었다지요. 요강은 본래 소변 전용으로, 마님의
나들이에 챙겨야 할 필수품이었습니다.
궁궐에서는 대소변 공용으로 ‘매우(梅雨)틀’이란 특제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학자들은 경복궁에 적어도 28개소의 뒷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양의 거리마다 똥냄새가 진동할 수밖에요.
하지만 농촌에서는 ‘똥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 사발의 밥은 주어도
한 삼태기 똥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똥재는 농사에 필요한 양질의 천연비료입니다. 수원에서는 똥재가격이 상품 한 섬에 30전, 중품 20전, 하품 10전에 거래되었다는군요. 이처럼 뒷간은
완벽한 리사이클링의 자연친화 제품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수질오염 문제를
남긴 서구의 수세식 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른 설계입니다.
일본은 배설자의 신분에 따라 등급을 매겼답니다. 금테 두른 똥이 생긴 거죠.
상품은 귀족의 똥재이고 다음이 공중변소, 상민, 범죄자 순으로 값을 매겼다고
합니다. '섭생(input)'에 따라 '분뇨(output)' 의 품질이 달라질 테니까요.
뒷간의 추억은 외갓집을 떠올릴 때 들춰지는 단골메뉴입니다.
뒷간에서 나와 바라본 밤하늘도 잊지 못할 풍경입니다. 온 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반짝임... 그 장엄한 별빛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요.
슬프게도 그런 밤하늘을 잃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 별들이 그리울 때는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뭍별이 살아나기를 기다리지요.
*글 이관순(소설가)daumcafe/leeletter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