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유난히 사랑했던 분들이 차례로 이 땅을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모든 나무들이 힘을 다해 푸른 생명을 풀어내는 4월에, 세상을 등졌다는 부음은 생명의 부활로서가 아닌 소멸로서의 ‘잔인한 4월’을 반추하게 합니다.
“애 낳으면 기저귀 가는 엄마들만 보인다더니, 나이가 드니 떠나는 사람만 보인다더라.“ 하는 글귀에도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니 ‘생과 사’는 쌍태(雙胎)인 모양입니다. 4월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돼 외출에서 돌아오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춘의 사랑과 아픔을 서로 싸매주고 아파했던 해묵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소리에 치받는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치매로 모시기 어려워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산길을 내려오다가 개울에 주저앉아 통곡했다는 겁니다. 어머니를 ‘고려장(高麗葬)’하고 돌아오는 그 자식이 나라고! 자책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나도 가슴이 먹먹해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분은 친구의 어머니만이 아녔으니까요. 대학시절, 하숙생활로 늘 배고파하던 날 불러다 따뜻한 흰쌀밥을 배불리 먹이신 나의 어머니이기도 한 분입니다. “그래 힘든 결정을 했구나.”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더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친구의 모습이 한 동안 어른거렸습니다. 5월의 화려한 꽃철을 ‘고려장’이란 슬픈 어휘로 채색한 친구의 말이 가슴을 그리도 시리게 하더군요. 김형영의 시 ‘따뜻한 봄날’이 낚시에 낚인 물고기처럼 흔들리며 올라옵니다. 지금은 소리꾼 장사익이 한 맺힌 가락으로 풀어낸 ‘꽃구경‘의 노랫말로 더 친숙해 졌지요.
❝ 어머니 꽃구경 가요, 내동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에그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고 가네.
엄니, 지금 뭐하신데유? 솔잎은 따서 뭐하신데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그리고 한 달 후 어버이 날을 하루 앞두고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그 한 달을 더 못 참아서, 불효막심한 죄를 저질렀다고 친구는 얼마나 탄식해 할까. 그의 아픔이 전류를 타고 내 아픔이 돼 가슴을 찌릅니다.
발인을 마친 후, 장지인 충북 제천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5월의 눈부신 신록이 흘러갑니다. 신록이 만든 풍경이 달려오고 멀어져갔습니다. 장지에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차창으로 줄지어 날 따라오던 산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마땅히 물을 곳도 없네요. 조객들 모두 낯선 벌판에 선 나무들처럼 쓸쓸해 보였습니다.
친구가 한줌 재로 남으신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키 낮은 봉분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한 발, 두 발... 발걸음이 한참을 더하면서 동트는 새벽빛 같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상념 속으로 잉크처럼 번져왔습니다.
그리고 명징하게 살아나는 가슴의 말을 듣습니다. “그래, 지금도 난 무겁게 살고 있구나. 손 놓으면 큰일 날 줄 알고... 훌훌 털고 빈손으로 가는 것을.” 가지마다 무성했던 푸르던 날들이 다 털려나간 한 그루 나목이 되어 살아갈 남은 길을 지금 내가 자박자박 밟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멀지도 않은 그날, 너울져간 친구의 전화 목소리가 이 밤에 또렷이 살아납니다. 고려장 떠나는 길목에서 나누는 모자간의 곡진한 사랑이, 5월의 못난 자식들 가슴에 그리움을 쌓이게 합니다. 5월은 그런 달인가 봅니다. “엄니 뭐하신데유?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유?”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소설가daumcafe/leeletter 11.8매)
우리에게 5월8일은 어버이날보다 어머니날로 더 친근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도 잘 잊고 살았습니다. 다시 더듬고 살갑게 비비면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고픈 간절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