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꽃 하얀 찔레꽃
이관순의 손편지 / 짧은 소설 [353] 2023.07.03(월)
올봄에 유난히 사랑했던 분들이 차례로 이 땅을 버리셨다. 그것도 온 자연이 힘을 모아 푸른 생명을 풀어내는 싱그러운 5월에, 날아드는 세상을 등진 이들의 부음은 생명의 부활로서가 아닌 소멸로서의 잔인한 봄을 반추하게 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 눈엔 군인만 보인다더니, 나이가 드니 떠나는 사람만 보인다”라고 하신 생전의 어머니 말씀이 이젠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그 글귀에도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니 ‘생과 사’는 같은 길에 있고, 무엇이 먼저고 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쌍태임이 분명하다.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습관처럼 광나루 역에서 내려 아차산 능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산자락에, 하얀 찔레꽃이 피었다. 볕 바른 곳이면 들이든 산이든 소담스레 피어나 향기를 풀어내는 찔레꽃은 어머니가 생전에 유난히 사랑했던 꽃이다. 꽃을 보며 잠시 상념에 젖는데, 전화음이 울렸다. 청춘의 사랑과 아픔을 서로 싸매주고 아파했던 해묵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치받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치매로 모시기 어려워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놓고 산길을 내려오다 “고려장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가슴에 들불처럼 타오르더라는 것이다.
“나 지금 어머니 고려장하고 돌아온다. 불효막심한 자식이지.”
자책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나도 가슴이 먹먹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달 만났을 때만 해도, 더는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면서도 자식 된 도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죽했으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시설로 모시고 갔겠는가. 그의 아픈 마음을 헤아렸다.
그 어머니는 친구의 어머니만이 아니셨다. 대학시절 하숙생활로 늘 배고파할 때, 따뜻한 흰쌀밥을 밥그릇에 고봉으로 얹어 먹이셨던 사랑과 인자가 넘치는 우리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래, 힘든 결정을 했구나.”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더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친구의 모습이 한 동안 어른거렸다. 화려한 꽃철을 ‘고려장’이란 슬픈 어휘로 채색한 친구의 말이 가슴에 스산한 바람을 일으켰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老馬識途)’라는 문장이 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의 지혜를 뜻하는 것으로 한비자가 쓴 말이다. 고죽국 정벌에 나섰던 제나라 군대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아갔다가 겨울이 돼서야 철군을 하면서 길을 잃게 되었다. 이때 지혜자가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하자며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도록 해 길을 찾게 되었다는 고사다. 친구의 말에서 ‘노마식도’란 말이 떠올랐다.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실려가는 노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넘어서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깊어지는 마지막 길에, 말은 없어도 어머니와 아들의 가슴에는 곡진한 사랑이, 아픔이 여울져 흘렀을 것이다. 끝내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자 노모가 일러주었다.
“아들아, 내려갈 길을 잃을까 봐 솔가지 꺾어 떨어뜨려 놓았다”라고….
늙은 어머니가 바로 노마식도의 지혜자였다.
노모의 사랑과 지혜가 와락 눈물을 쏟게 한 슬프고도 아픈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시인 김형영이 ‘따뜻한 봄날’로 시를 썼다. 1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기억을 맴돌던 시였는데 오늘은 친구를 생각하며 떠올렸다. 소리꾼 장사익이 한 맺힌 가락으로 풀어낸 ‘꽃구경’의 노랫말이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을 뿐, 효자는 없다’라고 자탄한 친구의 얼굴에 오버랩되었다.
그러고 얼마 있다가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요양원에 모신 지 딱 보름만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많이 아려왔다. 그 보름을 못 참아서, 불효막심한 죄를 저질렀다고 친구는 얼마나 탄식하며 아파할까. 그의 아픔이 전류를 타고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손을 잡고 아무런 위로를 전하지 못했다. 그저 ‘안타깝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을 잊었다.
발인을 마치고, 장지인 충북 제천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 동안 차창밖으로 눈부신 신록이 흐르고 있었다. 상념이 정처를 잃고 한참을 떠다니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줄지어 따라오던 산이며 숲들이며 모두들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간 곳을 물을 데도 없다. 그래, 모든 것은 잠시 스쳐갈 뿐이다. 세상도 세월도 너도 나도…. 낯선 광야에 덩그마니 홀로 선 나를 떠올렸다.
친구가 한 줌 재로 남은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앞장서 걸었다. 우리 나이로 아흔여섯을 사셨다. 친구들 어머니 가운데 맨 마지막을 장식한 장수하신 어머니다. 그래서 친구를 효자라고 칭찬했고, 잘 모시라고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물었는데, 이제 ‘어머니’라는 호칭마저 영영 길을 잃었다.
친구의 뒤를 따라 키 낮은 봉분 사이를 느릿느릿 걸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발걸음이 한참을 더할 때, 동트는 새벽빛 같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상념 속으로 잉크처럼 번져왔다. 그리고 명징하게 살아나는 가슴의 말을 들었다.
“그래, 지금도 넌 무겁게 사는구나. 손 놓으면 큰일 날 줄 알고…. 훌훌 털고 빈손으로 가는 것을.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백 년은 살 것처럼 움켜쥔 손은 여전하구나.”
유해를 안장하면서 장지 옆으로 제철을 만난 찔레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5월의 마지막 날. 삼우제를 끝낸 친구와 만나 위로를 건네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그날도 광나루역에서 내려 아차산으로 향했다. 산길을 넘어 숲길로 들어서는 가장자리에 아직도 군락을 이룬 찔레꽃과 다시 만났다. 다리도 쉴 겸 돌무더기 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하얀 꽃과 마주했다. 그날 장지에 핀 찔레꽃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찔레꽃을 참 좋아하셨는데... 기뻐하실까?” “그래, 반가워하시겠다. 우리 어머니도 생전에 찔레를 사랑하셨지.”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어머니 무덤가에 심은 찔레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년 어머니 기일에 묘지 경계를 찔레꽃으로 울타리를 둘렀는데, 지금쯤 하얀 꽃들이 그들먹하게 피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유달리 다섯 장 하얀 꽃잎으로 노란 꽃술을 품은 찔레꽃을 좋아하셨다. 다리가 아프실 때도 오월이면 찔레를 보려고 들에 나가셨다. 볼수록 순박하다며 무척이나 정분을 주셨던, ‘울 엄마 꽃’이다. 지금쯤 햇빛을 잘 구슬려 만든 향긋한 찔레 향이 싱그러운 바람에 실려 연가처럼 퍼져나가겠지. 꽃잎에 물방울로 매달렸던 향기가 바람결에 톡톡 터지며 코끝을 스쳐 가슴속 골짜기로 스며들었다. 소복소복 쌓인 눈처럼 하얀 꽃들이 어머니의 무명옷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