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56] 2023. 07. 24(월)
7월 11일 세계문학의 일가를 이루었던 밀란 쿤데라가 아흔네 살을 일기로 하늘에 별이 되어 떠났다. 우리에겐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그는 공산당에서 두 번이나 제명된 후 모국인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서 이방의 생을 살다가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작품마다 냉소와 존재론적 탐구로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이야기 했다.
그의 타계소식을 듣고 책장 깊숙이 잠자고 있던 소설 ‘느림’을 꺼냈다. 내가 그를 추모하는 방법은 그의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름빠름’ 이상으로 지나가고, 세상까지 ‘빠릿빠릿’을 재촉하니 내 생각이나 발걸음은 더욱 느려터지게 느껴지던 터이다. 초고속 초대용량 통신이 실현된 5G시대엔 영화 한 편 내려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0.8초. 인간의 초능력이 과학이란 날개를 달고 끝 모를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자니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 더럭 불안하던 참이었다.
물음표를 계속 찍으면서 책을 읽었다. 시대의 아이콘인 ‘빠름’과 ‘편리성’이 우리네 삶을 마냥 행복하게 해줄까? 지금처럼 인생을 광속으로 내몰다가 틈새에서 일어나는 농밀한 즐거움을 다 놓치는 건 아닌지. 임종을 앞둔 사람이 회상하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미세한 떨림으로 다가왔던 기억들이 아닌가. 인생을 살고나면 대단한 것들 보다 스치듯 지나간 순간들이 기억나고 그리워지는 법이다. 좀은 천천히, 좀은 늦더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을 느끼고 들추면서 사는 즐거움을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고즈넉한 저녁, 파리 근교의 고성을 향해 아내와 함께 한적한 길을 차를 몰고 달린다. 순간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며 젊은 남녀가 차를 몰아 쏜살같이 추월해 달려갔다. 그걸 보며 화자(話者)는 생각한다. ‘저 연인들은 이 아름다운 저녁을 감상하며 사랑의 밀어를 나눌 생각은 않고 저리도 달리는 충동에만 사로잡혀 있는가.’ 밀란 쿤테라의 소설 <느림(La Lenteur)>은 이렇게 첫 문장을 썼다.
쿤데라는 세상을 향해 탄식했다. “그는 아쉬워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그 옛날의 그 한량들은.” 그의 작품은 늘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인간 존재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깊은 성찰로 다가갔다. 이 소설과는 IMF 광풍에 휩싸이던 1998년 처음 만난 후, 세상이 온통 희망으로 차올랐던 21세기 초입에서 두 번째, 그리고 20여 년 만에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된 셈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쿤데라가 던지는 화두는 간결하면서 간절하다. 작중 화자인 ‘나’가 아내 베라와 함께 호텔로 개조한 프랑스의 한 성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소설을 구상한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인 이 작품에서 쿤데라는 희화의 날을 세웠다.
그는 작품을 통해 느리고 한가로운 관조와 여유가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현실을 특유의 가벼움과 철학적 유머로 느릿느릿 끌질을 쉬지 않았다. 그는 느림의 한가로움은 게으른 빈둥거림과 다르며, 그것은 마치 신의 창(窓)을 열 수 있는 행복이라고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다시금 관조하게 되는 말... ‘느림이란 기억이고, 빠름이란 망각’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구상할 때 발걸음은 느려지고,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할 때 발걸음은 빨라지는 법이다. 슬픈 것은 우리의 발걸음이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락모락 이는 자괴감은 툭하면 뛰자고 했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빨리빨리’를 최고의 가치로 숭앙해온 우리를 떠올리며 다시금 쿤데라의 ‘느림의 철학’을 생각한다. 속도를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잘못 됐는지, 고칠 것은 고치고 다시 나갈 길을 곰곰 따져볼 때가 아닌지. 코로나 덫에 갇힌 때가 이를 취할 수 있는 적기였다. 작품을 통해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라는 말은 너나없이 속도에만 집착해온 세상에 대한 탄식과 날선 비판을 담았다.
작품 속의 춤꾼의 비유도, 오직 대중적인 인기에만 연연하는 광대 인생들에 대한 신랄한 비꼼이며, 욕망에 대한 인간들의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일깨웠다. 희극과 비극이 뒤엉킨 인간의 운명을 특유의 유머가 밴 철학적 사유로 보여주는 쿤데라의 매력은 <느림>에 이어 국내에 소개된 소설 <정체성>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그는 외쳤다. “어느 날 그 여인이 변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달라진 것인가, 아니면 나의 시선이 변한 것인가?”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에 이어 <정체성>에서 그가 던지는 또 하나의 번뜩이는 비수다. 그는 도대체 삶의 비밀을 어느 정도 인식하며 살았을까. 부서지는 햇살이 천지에 피를 돌리고, 이슬에 낯을 씻은 연한 풀잎들이 옷깃을 여밀 때, 바람이 잉태한 나뭇잎들의 노래를 들으며 쿤데라는 별이 되어 하늘로 이사를 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가 남기고 간 <느림>의 체온으로 나만의 순결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열차가 발정 난 멧돼지처럼 삽시에 지나간 양수리 간이역 자리에는 지금쯤 무슨 꽃이 피고 있을까.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