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57] 2023. 07. 31(월)
남녀가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각기 다른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빗댄 말이다. 남녀의 결혼도 다를 리 없는 것이, 시작은 설렘으로 ‘동고동락’을 약속하지만 살다 보면 이 네 글자 속에도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갈리기 때문이다. 남자가 ‘동고’를 떠올릴 때, 여자는 ‘동락’에 기대를 걸고, 한쪽에서 동을 가리키는데 다른 한쪽은 서를 연민하면서 오늘 밤도 부부는 한 지붕 아래 눕는다.
세상은 복잡하고 삶은 늘 혼선의 연속이다. 인생이 ‘아이러니’하다는 말이 그래서 잉태한다. 그만큼 아이러니는 인생사를 이야기할 때 종종 들먹이는 단어다. 때로는 사람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어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부부가 논리를 세우고 모델을 만들어 살지만, 결국 인생이 세상이 우리가 공들인 전략을 비웃고 간절한 기대를 배신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오순도순 지내다가도 한순간 다투고, 삐치고, 미움을 사다 화해도 하면서 해를 더하다 보니 부부가 다 환갑을 훌쩍 넘어 칠순이 눈앞에 와 있다. 그래도 식은 의기를 그러모아 부모가 짊어진 마지막 미션 수행에 나선 것이 마흔 넘은 딸을 결혼시키는 일이었다. 어렵게 혼처를 찾아 결혼을 시키고 이제 두 발 뻗고 살겠다 했는데 또 다른 걱정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사는 장모님이 눈앞의 걱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근래에 부쩍 인지능력이 떨어져 더는 혼자 지내게 둘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자식이 여섯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지만, 형제 많은 집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저마다 이런저런 형편을 앞세워 눈치보기 바빴다. 혼자 사는 큰언니가 그중 낫지 않을까? 엄마가 끔찍하게 키운 막내딸이 정서적으로 좋지 않을까? 그래도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막상 얘기가 나오면 모두가 거북이 목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처남이 전화를 했다. 장모님이 콕 집어 막내딸이 좋고 막내 사위가 편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얘기를 들은 아내는 헛웃음부터 날리고는 딱 부러지게 선을 긋고 남편 입단속부터 시키고 나섰다.
“뻔하지. 큰올케가 부추긴 거야. 지금부터 당신은 모른 척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아내를 보자니 5년 전 일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딱 지금의 상황이었다. 연로하신 데다 원인 불명의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건망증까지 심해져 일상생활을 혼자 하시기에 무리라고 판단하면서였다.
자식은 아들인 나 하나뿐인데…. 남편이 고민 끝에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보 당분간 우리가 모시자. 더 어려워지면 그땐 요양시설을 생각할 테니까.”
그러자 아내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그릇이 못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시중드는 일은 다 내가 할 게. 철저히 당신 편에서 생각할 테니, 여보 용기를 내 보자.”
남편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내를 설득하다가 깨달았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아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막상 시어미를 시설로 보낸다 해도 마음 편히 지낼 여자가 아닌 것을 알지만 현실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남편은 어머니는 아들이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랬는데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도 판박이일까. 지금의 아내처럼 남편도 “내 선에서 해결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날 어머니 집으로 가방을 꾸려 떠났다.
퇴직 후 텅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했는데 이런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막상 부딪혀보니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못할 바는 아니었다. 노모는 밥하고 빨래하는 늙은 아들을 쳐다보며 내가 할 테니 놔두라지만,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멀쩡한 처자식 두고 와서 웬 고생이냐며 집으로 가라고 등을 밀지는 않으셨다.
노모는 아들의 어줍은 손놀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화처럼 가라앉는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과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요양병원에서 넉 달 남짓 계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돌아보면 아들에겐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의미가 있고, 모자간 살뜰한 추억도 쌓았으니까. 만일 그 1년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편은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당신도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나누면 좋겠다고 권했다. 장모님이 막내딸을 떠올렸다면 나름 이유가 되는 것이, 여섯 자식 중 장모님이 살아본 집은 막내뿐이었으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막내딸이 안스러운지 돌봐주시겠다고 자청해 3년을 같이 사셨다. 남편이 장모님 의중을 알 것 같아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아니!’ 일언지하에 사양했다. 몸이 힘들어 싫고, 마음이 안 맞아 싫다고….
누군들 좋아서만 모시느냐고 한마디 얹었다가 조롱과 비난의 살이 돌아왔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말해 볼까? 나 그때 당신 짐 싸서 어머니 집에 갈 때 다시 봤어. 사람이 결혼했으면 아내와 자식에 대한 책무가 최우선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어머니에게 훌쩍 가버렸을 때 내 심정 생각해 봤어? 당신에게 가정은 뭐고, 아내란 뭐지?”
남편은 그 말에 맥이 풀렸다. 충분히 대화했고 모시자는 안을 거부한 건 누구인데…. 배우자 처지를 그렇게 외통수로 몰아넣은 건 아내가 아닐까. 냉정히 따지면 그나마 그때 결정은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딸이 제 어머니를 나 몰라라, 너무나 이기적인 심보 아닐까. 장모님을 위한 최선책을 생각해 보자는데 해묵은 이야기까지 꺼내서 싸잡아 비난을 하다니…. 남편이 서운함을 말하자 아내는 보다 냉정하게 짚었다.
“당신 문제는 평생 나만 나쁜 여자로 만든다는 거야. 사람은 다 달라. 당신 같은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어. 나는 내 엄마든 당신 엄마든 누구도 우리 가정에 들이고 싶지 않아. 내가 당신처럼 가정을 팽개치고 엄마에게 갈 생각도 할 수 없고.”
아내는 정말 그때 일로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남편의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일어야 대화가 될 텐데 그렇지 않았다. 남편 가슴속에서도 눌러온 서운함이 감응하듯 굼틀거렸다.
내가 어머니 모시는 일로 아파하고 잠 못 이룰 때, 외면하던 아내가 만일 나였다면 그처럼 무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 생활 40년을 넘긴 시점에서 스스로 되묻는다. 가정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평생에 걸친 희생과 봉사일까? 부부가 나누는 동고동락은 무엇이지? 부부가 평생을 함께 해도 산다는 것은 늘 복잡하고 혼선을 부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부는 오늘도 한 이불을 덮는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