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59] 2023. 08. 14(월)
우울 바이러스가 세상을 삼켰을 때, 사람들은 무엇에 기대어 하루를 살까?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울 주술 하나 없이, 상비약 하나 챙기지 못하고 마주친 현실이란 시간 앞에서 말이다. 지난 팬데믹 3,4년을 보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때로는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안개처럼 천겁을 두른 인연도 맥없이 사라지는 인생인데, 때론 엉뚱한 이들이 뜬금없이 생각나고 실없이 마주쳤던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30년 전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중 하나였다. 유럽에 왔다가 짬을 내 러시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1991년 말로 사라진 소련을 러시아가 계승한 후 모스크바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언론을 통해 보고 들은 대로 옛 소련의 위세는 간 곳 없고 김 빠진 거리와 온기 잃은 사람들의 표정뿐이었다. 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고, 상가는 을씨년스럽고 마트의 매대는 빈 곳이 허다했다. 짧은 시간에 영고성쇠의 필름이 빠른 속도로 눈앞을 스쳐갔다. 때마침 주말이었는데도 거리는 한산했다. 사방을 돌아봐도 딱히 눈을 끄는 곳이 없었다. 찾아간 곳이 전쟁기념관이었는데,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풍경과 마주쳤다.
10여 명의 신혼부부 일행과 만난 것이다. 드레스 코드 일색인 것이 예식장에서 금방 나온 젊은이들 같았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랑들과 꽃단장을 한 신부들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환히 웃는 모습이 식은 거리 풍경과는 딴 세상이었다. 어, 이건 또 뭐지? 신랑 신부가 줄지어 충혼탑에 분향을 하는 것이다. 여기선 결혼하면 충혼탑 분향부터 하나? 역시 공산국가의 후예다웠다.
분향이 끝나자 이들은 광장에서 요란하게 웃고 들레며 춤판을 벌였다. 시내의 우울한 거리 풍경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 펼쳐졌다. 근심이란 없는 젊음의 군무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았다. 이어서 찾은 곳이 레닌의 언덕이었다. 평원지대인 모스크바에 유일하게 솟은 구릉에 위치했다. 모스크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도 주말 주인공은 신혼부부들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자축하는 파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을 붙잡고 함께 춤을 추지 않겠느냐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 질문이 나를 향할 때, 그 훤칠한 여성의 키와 백옥 같은 피부, 파란 눈, 팔등신 몸매에 눈이 부셔 웃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날 저녁,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세상은 다 잿빛인데, 무엇이 그들을 신바람 나게 했을까? 외관상으로 모스크바는 희망이 없는 도시였다. 일이 백 달러로 한 달을 살아야 하고, 모든 경제권은 마피아가 틀어쥐고, 일자리는 없고, 물가는 매일 같이 뜀박질하던 때였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도시에서 무엇이 그들을 춤추게 했을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졌다. 성서 속 야곱이란 인물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꿈꾸고 마음을 줄 수 있는 짝을 구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내일을 꿈꾼 사람이었다.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약속을 열 차례나 어기는 외삼촌 밑에서 20년을 일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견뎌내 라헬을 아내로 맞는 과정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망의 대서사다. 성경에는 곳곳에 이러한 서사 구조가 녹아 있어 흥미를 돋운다.
20년을 희망으로 살은 야곱이지만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아이를 낳다 죽고, 외동딸은 이방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 하나는 객사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자권을 빼앗기고 복수의 칼을 갈아온 형의 군대가 턱밑까지 추격하는 상황에도 내몰렸다. 그럼에도 야곱은 이 모든 시련을 감내하고 이겨냈다. 그를 구원한 것은 믿음의 힘이었다.
여기서 인생을 살리는 상비약 두 가지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꿈(희망)’이고 또 하나는 ‘믿음’이다. 쓸쓸한 모스크바 광장에서 신명을 다해 파티를 즐기는 신혼 남녀들, 그 순간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의 얼굴을 활짝 웃게 했을까? 하나는 짝을 만남에서 갖는 꿈일 테고, 또 하나는 일생을 동행하는 반려자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리라.
꿈은 내가 꾸는 것이 있고, 심어주는 꿈이 있다. 내가 꾸는 것보다 심어주는 꿈이 끈기 있고 힘이 있다. 그러나 심어주는 꿈은 오래 걸리면서, 아픔 고난 등을 거쳐야 이루어진다. 그것이 고통스러워도 슬프지 않은 것이, 내 꿈은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순간을 이기게 하는 힘은 서로가 심어준 꿈을 확인하는 데 있다.
30년 전 모스크바 광장에서 만났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그들이 열망했던 ‘꿈’과 ‘믿음’을 여전히 지탱하고 있을까? 생뚱맞게도 이따금 스쳐간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깃발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