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대기업 3세 마약 밀반입 적발’이란 큼지막한 기사가 나서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기업인의 손자였습니다.
낙심하고 있을 그 분 얼굴이 떠오릅니다. 유독 장손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분이신데...
최근 기업인 3세의 잇단 탈선으로 사회적 지탄이 비등하던 때입니다. 부러울 게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왜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까?
누구는 ‘돈 버는 데만 급급해 정작 쓰는 건 안 가르쳤다’며 돈 탓을 하고, 또 누구는 세상 물정 모르고 자라서 그렇다하고, 혹자는 가정교육을 탓하기도 합니다.
공감은 하되 동의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3세가 다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한참을 그 생각에 머물다가 내 나름 결론을 내립니다. ‘목표 없는 인생’이 빠지기 쉬운 늪 하나 있다는 것을.
가진 게 넘쳐서 젊음이 열망하는 뚜렷한
목표가 서있지 않을 때, 마인드 컨트롤에 이상이 작동합니다.
열락에 빠진 사람은 갈수록 보다 자극적인 걸 원합니다. 이것저것 다 즐겨 보지만 이내 시들해지니 또 새로운 걸 찾지요. 하지만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바람 앞에 선 풀처럼, 몸은 눕고 또 누어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그런다고뿌리가 뽑히지 않습니다. 꼭 가야할 길이 따로 있으니까요.
눈을 매료시킨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프로골퍼 신지애가 지난 해 2월 공개한 굳은살이 굵게 박인 그녀의 두 손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처음 볼 때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비시즌 동안 쏟은 땀과 각고의 노력이 오롯이
손바닥에 탄흔처럼 남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를 여인의 섬섬옥수라고 말할까. 손가락 마디마디가 갈라지고
나무의 등걸처럼 터지고 거친 투박한 손.
언론에서는 이를 ‘영광의 상처’로 불렀습니다.
신지애는 사진과 함께 글도 예쁘게 남겼더군요.
“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일 새 시즌이 시작되거든요.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줄 거예요”
이 사진은 여러 학교에서 수업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철이 철을 연마하듯이,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생각이 의식을 낳고
그 의식이 강철 행동을 낳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20대가 10만 명이란 기사가 떴습니다.
베트남 축구가 저번 동남아축구대회에서 우승하던 날이었지요. SNS에 이런 댓글도 올랐습니다.
“베트남 너거들 좋컸당. 한국엔 이런 열광할 일 당최 없당.” “박항서 매직 부러부러. 우린 매직은 탈영한지 오래.”
흥에 겨운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고, 히딩크 매직도 있었는데
그 시절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한 젊은이가 목소리를 깔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에 무슨 신날 일이 있나요 지금?
곤두박질치는 마이너스 경제,
넘쳐나는 실업과 취준생들,
미래가 불안한 청년,
실종된 열정 패기 도전,
복장 터지게 미쳐 날뛰는 집값 전월세,
주말마다 거리에 아우성치는 사람들.
모두가 검고 칙칙한 슬픈 자화상만 연신 쏟아내니 가슴만 시립니다.
기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과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
의미 있는 날들은 대부분 가슴으로 기억합니다.
졸업, 결혼, 합격, 폐업, 실직 같은 날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합니다.
오늘을 힘들어하는 고개 숙인 이 땅의
많은 분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때가 오지 않았을 뿐, 가슴으로 기억할 그날은 꼭 찾아올 것이라고.
터키 시인 나짐 하크메트는 그의 시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로, 젊은이들의
등을 토닥여 줍니다.
“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글/ 이관순(소설가)/daumcafe/lee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