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과천 대공원에 갑니다. ‘올금회’(all金會)란 이름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두어 시간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요일 약속은 피할 만큼 이 자리를 아껴왔습니다. 여섯 명이 고정 멤버로 참여하는데 모두 기이한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입니다.
고향도, 학교도, 전공도, 성격도 다 다른, 동질이란 면은 하나 없는데, 고교시절 친구가 서로의 친구를 소개하며 만나기 시작한 것이 9명이 되고 반세기에 이르도록 살을 비비며 정을 쌓았습니다. 강했던 개성도 주장도 이젠 모두 둥글둥글한 돌이 되고, 무슨 말을 해도 흉이 되지 않는 헌 잠옷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지요.
교회 중직자이면서도 담배와 절연을 못해 온 친구가 마침내 금연을 선언하면서 박해 받던 얘기를 꺼냅니다. 어느 자리에 가서든 담배를 꺼내 물면 눈을 치켜뜨고 타박하는 사람이 꼭 있답니다. “담배 피우세요? 교회 다니시잖아요?” 담배와 교회가 무슨 앙숙이라고, 물어도 꼭 교회와 엮어댄다는 겁니다. 그럴 때 그의 대답은 영화에서의 명대사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담배 때문에 교회를 끊으랴?” 친구의 유머감각은 늘 주변을 즐겁게 합니다.
그의 말대로 천국도, 영생도 다 중요하지만, 이보다 앞서는 것은 오늘을 사는 내 모습입니다. 사람이 종교를 갖는 건 공리적으로 바른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이니까요. 그렇다고 종교의 효용이 겨우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넓이와 깊이를 더한다는 의미지요. 어떤 이는 종교를 갖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지만, 신앙과 종교의 힘은 생로병사에 대한 수긍에서 시작됩니다. 길어도 20년 후면 지구에서 소멸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미물임을 안다는 겸손의 증거지요.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오며, 그때도 검푸른 우주라는 바다는 여전히 광활할 테니까...
신앙 같은 딱딱한 얘기를 하는 건 두려움에 떠는 또 다른 친구 때문입니다. 암 선고를 받고 찾아온 친구와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말은 담담하게 하는데 얼굴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웠더군요. 내가 불쑥 “이참에 너도 교회 나오면 좋겠다.” 했더니 전도도 때를 봐가며 하라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는 여전히 무신론자입니다. “그럼 술 한 잔은 어때?” 그러자 지금 환자에게 농지거리 할 거냐며 버럭 역정을 냅니다. 생각을 짜 봐도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미안하다 친구의 위로가 이리도 빈 하구나...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는데 친구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합니다. “친구가 변변치 못해 미안타.”라고. 그리고 헤어지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내 기도 많이 해 줄 거지?” 우리는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그래... 약한 게 인간이니까. ‘친구의 사랑’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아픔으로 몹시 괴로워 할 때, 한 친구가 찾아와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느냐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많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의 말은 현명하고 옳은 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환자에게는 그 많은 이야기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다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하는 친구를 보고 눈물만 글썽이면서 친구의 손목을 꼭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한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때 친구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이른 아침 안개 낀 호수공원을 걷다가 젊은 날, 어려울 때 내손을 잡아주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슬픔을 함께 등짐 지고 갈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한 세계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 포기 식물 같이, 친구는 사람에게 그러한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길을 가다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전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소식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떠오르는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친구가 그리울 때는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을’ 산책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은 신기합니다. 숲마다 바위마다 호젓합니다.... 나의 생활이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의 친구들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고독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모릅니다. 모두가 호젓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정은 만지지는 못해도 뚜렷이 존재하는 안개 같은 것이죠. 옛날 작가들은 친구와의 우정을 작품만큼 소중히 여겼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존경했던 싱클레어와의 우정은 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을 친구 이름에서 따올 만큼 돈독했지요.
생텍쥐페리는 나치에 학대받던 유태인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해 ‘어린 왕자’를 써 헌사할 정도로 친구를 아꼈다고 했습니다, 작가 에밀졸라와 화가인 폴 세잔의 우정도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서로를 신뢰했습니다. 폴 세잔이 법학과 미술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에밀졸라의 우정 어린 편지가 폴 세잔을 미술로 인도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가도 빛났던 우정은 시공을 넘어 아름답고 녹슬지 않습니다. 이따금 친구와 우정을 허문 사람을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불면 훅 날아갈 그런 일로 우정을 깨는 일만은 피했으면 합니다. 친구도 부모처럼 무한정 곁에 둘 수 없으니,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은 죽기까지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어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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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이 되지 않는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는 남의 얘기를 주고받아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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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 유안진의‘지란지교를 꿈꾸며’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