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30]
12월에 쓰는 비망록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가 명상이 되는 시간입니다. 머지않아 남은
한 잎마저 떨어질 테지만 소설 속 잎새처럼 내 마음에도 지지 않을 나뭇잎
하나 그려놓았습니다.
이태백이 세월을 빛과 그림자로 비유했듯,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날 만큼
그림자도 들이며 삽니다. 선하든 않든 모든 삶의 뒤란에 따라붙는 것이
그림자의 속성입니다. 암흑 속에 은둔의 삶을 살았어도 그림자는 불가피한
동반자로 남지요.
한 때 베스트셀러 시집이었던 ‘그대는 별로 뜨고’에서 시인 김소엽은
“그림자 당신은 누구신가… 그림자여 어찌해 좋은 곳 다 두고/ 발길 차이는
곳에 와서/ 두발 휘어잡고 놓아주질 않는가/ … /당신은 태양의 충직한
파수꾼인가/ 하늘의 밀정인가/ 내 존재의 증인인가… 묻습니다.
세월의 벼랑을 느끼는 세밑. 세월을 보는 눈은 동서가 비슷합니다.
독일 시인 실러가 세월을 비유하길 “미래는 멈칫대며 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지나가고, 과거는 영원히 멈추어 서 있다”라고 했지요.
중국의 석학 린위탕도 1년을 돌아보며 “성취가 1/3이요, 이루지 못한 일이
1/3이요, 나머지 1/3은 생각도 안 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장삼이사의
보통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리오.
1년이란 많은 시간을 어디에 소모한 것일까? 마음 밭에 댓바람 소리가
서걱대면 곳간에 들인 것이 없다는 반증일 테고, 푸근하면 나름 곳간을 잘
채운 사람입니다. 추수를 끝낸 농부가 아침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이 쑤시며
나오던 얼굴. 내가 기억하는 가장 편안한 얼굴입니다.
내 삶에 드리운 한 해의 그림자는 연초에 꿈꾼 많은 것들의 실종에서 더
짙게 나타납니다. 그중 실천하지 못한 이웃사랑에 미련이 남습니다. 성서는
길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한 이는 성직자도 레위인도 아닌, 천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음을. 이때 성경은 ‘누가 진정한 그의 이웃이냐?’고 묻지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착한 사마리아인의 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백주에 부녀자가 희롱당하는 걸 보면 분기를 느끼고, 차도에서 노는
아이를 보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람의 심성이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무관심, 무간섭이 우리 사회의 강령처럼 되었습니다. 옆 사람이 죽어나가도,
길에서 여성이 폭력을 당해도 모두 외눈박이로 지나칩니다.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화려해도 내면으로는 고독이란 병을 앓는 환자입니다.
무늬만 부부인 사람이 늘어나고, 호적에만 남아 있는 가족도 많아졌습니다.
모두가 현실적인 자기 논리에 매몰돼 있어서겠죠. 4인 가족이, 3인, 2인,
지금은 1인 가족이 돼 혼밥, 혼술에 익숙해졌고,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
타들어 갑니다.
지난 1년. 저마다 아팠고 실패했고, 이별도 후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픔, 실패, 이별, 후회는 다 인생의 스승입니다. 삶의 여정 곳곳에 지불한
비싼 수업료를 생각해서라도 배운 것은 내년에 잘 써먹으면 될 일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올 한 해 힘들어 한 나를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 주세요.
‘별이 없는 밤하늘은 없다’는 말처럼, 다시금 거울 앞에 앉아 가보지 않은
길에 다시 희망을 걸어요. 걱정이야 되지만 올 보다야 낫겠지 기대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지지 않는 잎새 하나 그려 넣고, 걷다가 뛰고, 쉬었다 다시
걷고 뛰면서 나만의 존재 이유와 사연을 만들며 살아요.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