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앓는 '속도의 병'

[9] 이관순의 손편지

by 이관순

세상이 참 빨라졌습니다. 철들면서 한없이 들어온 얘기는 세월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세월이 뛰어가는 말을 문풍지 구멍으로 보는 것 같다’고 탄식했을까. 하지만 세상이 빠른 것과 세월이 빠른 것은 완전 다른 개념입니다. 세월이 변함없는 우주질서의 영역이라면, 세상은 변화무쌍한 과학기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니까요.


세상의 속도경쟁이 점입가경입니다. ‘속도’라는 단어가 붙는 영역은 모두 속도전에 휩싸였습니다. 정보혁명으로 시작된 속도전은 마침내 생각의 영역까지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빨아들이는 이 속도전은 언제라야 끝나고, 우리 삶을 만족시킬까. 생각의 과속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일까지 위태위태하게 만들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제어하지 못합니다.


어느 책에서 보았습니다.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라,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라고. 그래서 생각에는 깊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생각의 근력을 키워 천천히, 오래, 깊이 있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 전복돼 한 번 뿐인 인생을 후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구는 인생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는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몇 날 몇 달을 천착하는 생각이 하나라도 있냐고.

세상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요. 느리게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게 인생입니다. 고은의 시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현각 스님의 수행서인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생각의 폭주를 경계한 글들입니다. 인생은 한 곳에 내려 후다닥 사진 찍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후딱 사진 찍고 돌아가는 단체 관광 상품이 아니니까요.

세상엔 위대한 삶도 시시한 삶도 없습니다. 다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인생길을 가는 사람과 쫓기듯 달리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생사봉도(生死逢道)라고, 삶과 죽음은 언제나 길 위에 함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살고자 가는 길인지, 죽음을 향하고 있는 길인지 순간 순간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듯합니다.


가난 하지만 수다 떨 친구가 많은 소말리아 여자와 부자지만 매일 혼자서 밥 먹는 노르웨이 남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독자들에게 한 질문입니다. 속도를 무너뜨린 느림의 철학자인 그는 저서 '유혹하지 않으리'에서 몇 가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안합니다.

먼저 느림의 실천 덕목으로 걷기와 사색을 권했지요. 그는 취미인 산책 때문에 제자들의 항의를 자주 받은 에피소드로 유명합니다. "출근길에 핀 꽃과 하늘의 구름을 보느라 걸음이 늦어져 수업시간을 못 맞출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느림은 게으름과 다르다. 느림은 나만의 리듬을 따라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빠름에도 미덕이 없을 리 없지요. 문제는 세상이 빠름의 미덕을 걷어차 버릴 만큼 빨라진 것이 비극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핸드폰 들고 수다만 떨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입은 다물고 대신 눈을 크게 열어 주변을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몸이 느림을 향할 때 정신은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쌍소는 한마디로 느림을 "포도주가 숙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다르듯, 느림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삶"으로 정의했습니다. 빠름에 내몰려 사느라 잃어버린 ‘느린 시간’을 되찾아라. 그것만이 진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강변했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입니다. 작고하신 박경리, 박완서 선생이 생전에 즐겨 써온 말입니다. 물처럼 살다 물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표현한 말도 없을 듯합니다. 두 분은 흐르는 물처럼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삶을 보여주었고, 만물을 길러주고도 자신의 공을 과시하거나 다투려 하지 않는 상선약수의 초연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두 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자유롭게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서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주어진 일상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한 분은 원주의 산골에서 흙을 파고 나무를 가꾸면서, 또 한 분은 아차산 골짜기에서 새소리 물소리 벗하며 빛나는 노년의 침묵과 나이 듦의 편안함을 즐겼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뿐. 누구는 조금 짧게 누구는 조금 길게 살다가 갈 뿐입니다. 두 분의 삶을 보면 이 소중한 시간을 이해하면서 살라고 눈짓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서조차 고마움을 느끼는 일상에서 마음의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느림은 그래서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지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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