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이카루스

[10] 이관순의 손편지

by 이관순

글로벌 5G 상용화는 4차 산업혁명의 불꽃 튀는 새로운 마법의 시대를 예고합니다. 자고나면 벼락처럼 찾아오는 낯선 방문객들. 인공지능(IA),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loT)... 이처럼 마법의 진화는 끝 모를 고도를 향해 솟아오릅니다. 이들을 편리함, 편의성 증대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인간이 부리는 마법이 인류의 축복일까? 불행일까? 또 다른 의문을 던집니다. 미래 탐험이란 끝 모를 과학의 호기심이 사람과 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광화문이란 공간에 서면 혼란은 더 가중됩니다. 광화문은 거리의 원표가 있는 곳이죠. 모든 길이 광화문으로 통하는 건 이곳을 기점으로 거리가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뒤로 전개되는 경관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경복궁~청와대~북악산~북한산~도봉산을 이어가며 절창을 부릅니다. 하지만 눈을 아래로 내리면 아스팔트 위엔 또 다른 마법의 세계입니다.


한편에서는 미래의 생존을 위해 인간 초능력 실험에 명운을 거는데, 대한민국 심장인 광장에는 내일이 아닌 과거에다 발을 묶고 와글와글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형국이 고통스러운 모습이 연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채 쌓으면 부수고, 지으면 허물기를 반복하느라 기력을 소진하는 나라. 자괴감으로 쪽잠을 풀지 못했던 사람들은 언제라야 온잠을 잘까?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광장엔 함성으로 가득합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밀납날개로 창공을 나는 대한민국이란 이카루스. 저들은 태양을 향해 나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밀랍날개를 만든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빛의 황홀함에 빠져 퍼덕이는 날갯짓을 멈출지 모릅니다. 누구는 이를 추락이라 하고, 혹자는 비상이라 합니다. 하지만 힘에 부친 밀납 날개는 이미 태양의 열기에 녹기를 시작한 건 아닌지, 추락을 막아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고 있지는 않은지...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IMF 국란의 시기로 시계를 돌려봅니다. 1997년 11월 21일, 역사는 이날을 대한민국이 IMF 앞에 알몸을 드러낸 수치일로 기억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눈물보다도 절망이었습니다. 은행과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빅딜과 워크아웃 태풍에 휘청거렸지요. 실직으로 거리에 내몰린 이웃들로 가정의 울타리는 속절없이 해체되고, 늘어나는 노숙자들.


그즈음, 대량 해고사태를 빚은 종로 제일은행 본점에서는 ‘남편 기 살리기’ 행사가 열렸지요. 곱게 화장을 한 많은 중년 여인이 앉았습니다.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가 읽혀지고, 내부에서 제작한 <내일을 준비하며>란 영상이 흐르면서 장내는 비등점을 향합니다. 남편의 고단한 하루 일과를 시간 단위로 좇는 카메라, 무거운 톤으로 깔리는 내레이션... 달그락, 톡, 핸드백에서 열리는 소리가 적막을 깹니다. 한 행원의 자작시가 낭송될 때, 숨죽였던 부인들의 어깨가 들썩입니다.


“이 침묵의 땅에서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풍경은 모두 낯설기만 합니다/ 날마다 얼굴 마주하던 사람, 사람들/ 손때 묻은 책상, 펜과 서류뭉치/ 한 몸이던 단말기 그리고 해보다 눈부시던 우리들의 미소까지/ 이 모두를 하늘에 걸어두고/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


2001년 8월 23일. 3년 만에 IMF차입금을 모두 상환하고 우리가 만든 ‘IMF 괴물’을 자력으로 무너뜨린 날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자긍을 높였던 역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는지를 배웠고, 뿌리 깊고 튼실한 나무를 키우려면 어떤 거름을 줘야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후 불과 십수 년만에, 곳곳에서 파열음만 커집니다. 그때의 배움은, 교훈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어깨를 한 없이 쪼그라들게 하는 일들이 기를 숙일 줄 모르고 일어섭니다. 경제는 식어빠진 찬밥이 돼가고, 취업 못한 젊음은 우울의 늪에 빠지고, 사방의 벽은 높아 가는데, 여기에 우한 코로나까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열리는 걸까.


전철, 버스에도 마스크를 낀 채 눈만 내놓고 스마트폰을 만집니다. 잘못 기침이라도 했다가 레이저 시선이 몰려오죠. 영화 속 풍경도 이어집니다. "제발 다가오지 마세요" 눈빛이 역력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0.1마이크로미터 바이러스 앞에 속절없이 허약한 만물의 영장. 이는 또 다른 신종의 마법 마술입니다. 지역봉쇄에 가택연금(격리)까지 당하니 정말 "거지 같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지요.


대한민국 민낯을 들춰낸 우한 코로나. 그동안 대한민국을 수사한 모든 말은 화장발이었나. 자괴감마저 부풀어 오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으로 못나가고 미궁에 빠져있으려나? 검푸른 바다가 아가미를 벌리고 기다리는데, 이 위기를 넘지 못하면 슬프게도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날개가 녹아내린 이카루스는 추락할 것이고, 상전벽해의 세상을 만든 초능력의 마법 마술도 빛을 잃고 어둠에 잠기겠지... 절박감이 여기저기서 묻어납니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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