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27]
인생은 ‘곡선’과 ‘틈’입니다
사람 사는 게 꼭 등산 같다고 해 인생 여 등산(人生如登山)이란 말이 나왔어요.
때론 난관에 부딪히고 때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디디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인생이 그렇고 역사도
그렇습니다.
치열하게 인생을 산 사람은 6780년대를 거친 세대입니다.
까라면 까고, 박으라면 박고, 막히면 뚫어냈지요. 무슨 일이든 맡기면
척척해냈던 세대입니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빨리빨리’란 과도한
집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빨리는 우리가 숭앙한 미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압축성장으로 경제대국이란 등반엔 성공하지만, 뒤 안에는 오류도, 잘못 든
길도 많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직선입니다.
앞선 자를 따라잡자니 힘에 부치고 자연 빠른 직선을 선호하게 되면서 집념으로
바뀌었습니다.
현대인의 큰 오류는 직선에 있어요. 그 시발점에 증기기관차 발명이 가져온
도가 있습니다. 산이 막으면 터널을 뚫고, 물길에 막히면 다리를 놓았지요.
직선의 효능이 확인될수록 수난을 당하는 건 자연의 곡선들입니다. 철도,
고속도로, 길이란 길은 모두, 이젠 동네 길까지 외곽으로 빼내
직선 화하는 조급증을 앓아왔지요.
직선의 효능은 주거공간에까지 찾아들었어요.
성냥갑 아파트가 한국 건축의 획기적인 표상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서구의 문화를 우린 수십 년 만에 후다닥 해치우는 솜씨를 뽐냈어요.
‘굽은 건 죄다 펴라.’ 이젠 구불구불한 섬까지 직선의 유혹에 휘말렸습니다.
그 많은 섬들이 쭉쭉 뻗은 다리와 길로 연결되면서 섬의
고유한 맛을 잃었지요.
자연을 이기적으로 다룬 ‘직선’은 언젠가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인류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의 바탕엔 이 ‘직선의 유혹’이 깔려 있어요. 계층, 세대 간
갈등 역시 직선을 앞세운 압축성장이 남긴 후유에 다름 아닙니다.
내 직선의 행위가 칼날이 돼 타인에게 상처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입힌
상처가 어느 순간 내 상처로 돌아온다는 걸 알 때는 시간이 많이 흘러간 후지요.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미래에 행복을 띄우고 달렸습니다. 그땐 평균수명이 환갑이면
족할 때니 짧은 해에 서둘러야 했지만, 이젠 백 살도 살아야 하니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합니다. 성공신퇴(成功身退)란 말처럼 어느 위치에 올라 선
다음에는 내려올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산을 아는 사람은 정상에 오르는 것을 등산으로 말하지 않아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사히 하산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잘 살았는데
마지막 길이 산뜻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허공에 흩뿌려지고 맙니다. 그래서 석양을 등에 진 사람일수록
조심스러운 것이 내리막길입니다.
자연 속에서 미음이 편안해짐은 자연의 착한 곡선 때문입니다.
나무와 숲, 바위, 작은 풀포기까지 곡선 아닌 게 없어요. 곡선의 회복은 자연의
순응이고 재활입니다. 그동안 빨리 걷느라 다리도 아프고 지쳤으니
이젠 천천히 생각하며 걸어요. 주변을 살피고 나도 성찰하면서
구불구불한 숲길을 밟듯이.
곡선에는 틈이 생깁니다. 그 틈으로 햇살이 파고듭니다. 틈이 없는 사람은 잘 나고
똑똑해도 정 주며 살기가 쉽지 않아요. 시멘트 바닥처럼. 틈이 있어야 물이
스며들고 땅을 촉촉이 적십니다. 인생에서의 틈은 자연이 만들어 줍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불고 꽃 향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틈과 곡선이 삶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틈과 곡선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입니다.
100세 시대가 행복하려면 꼬부랑 인생길을 돌 때, 서로에게 틈을 열어주고
오가면서 살을 비비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일입니다. 틈만 보면 찾아드는 물처럼,
나의 낙원은 굽이도는 지금 이 자리, 이 틈에 있어요.
‘Here &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