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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Dec 17. 2020

넷플릭스에서 본 ‘Emily in Paris’

에밀리, 파리에 가다

문득 프랑스 파리가 보고 싶어서, 선택한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 파리를 처음 만났던 30여 년 전으로 날 데려다줄 것 같아서 골랐는지도 모른다. 파리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가 살아있는 도시니까. 

     

드라마를 통해 주인공 에밀리가 보았던 파리를 나도 보는 듯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에펠탑, 길거리 카페, 오페라 하우스, 세느 강 등등. 이 드라마에서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파리의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곳을 찾아 그려냈다.    

  

파리에 처음 갔을 무렵,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라는 시가 있었다. 멋지고 낭만적인 미라보 다리를 상상하며, 그 다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겨울에 만난 미라보 다리는 그냥 평범하고 초라했다. ‘이 다리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시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시인의 감정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밑에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괴로움이 지나고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마주 잡고서 얼굴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흐르는 영원이여!

오! 고달픈 눈길이여!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 따라 사랑도 흘러간다. 삶이 길어 희망만이 남았구나.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옛사랑은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밑엔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 기욤 아폴리네르          



에밀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홍보하는 향수가 있었다. 그걸 광고하기 위해 촬영하던 곳이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였다는 걸, 드라마 볼 때는 몰랐다. 이 다리는 파리를 상징하는 다리답게 각 코너에 청동 기둥과 금박을 입힌 4개의 동상까지 서있다. 미라보 다리보다, 세느 강에 있는 다른 어떤 다리보다 화려하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지로 선택을 받지 않았나 싶다.  

   

화려하기로는 오페라 하우스도 빠질 수 없다. 에밀리가 디자이너 피에르 카도를 만나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클래식한 까만 드레스를 입은 에밀리를 보고, 언뜻 오드리 헵번인 줄 알았다. 화려하고 웅장한 극장에 어울리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피에르 카도는 물론이고 에밀리 직장의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수를 위해 일 한다는 직업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대중의 접근이 어렵게 담을 높이려는 사업전략도 나왔을 것이다. 에밀리의 미국식 방식은 대중 전체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담을 낮추려는 전략이었다. 두 전략의 충돌 속에 에밀리는 자신의 마케팅 방식으로 조금씩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일 중심적인 미국인의 정서가 드라마 속에서 은근히 녹아있었다. 


에밀리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가브리엘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훈남이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요리사로 그는 등치도 좋다. 영어까지 잘해 에밀리를 위해 통역도 해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남자 주인공들은 몸이 마르고, 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데....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모습의 가브리엘은 에밀리와 친해지면서 점점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진다.     


5층에 사는 에밀리는 4층을 자기 집으로 자주 착각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다섯 번째 층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는데, 거기는 4층 가브리엘 집이었다. 그 실수 덕분에 두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1층을 0층으로 표시하는 이런 문화적 차이는 어쩌면 사용하는 단어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랑스식 ‘층’은 étage(선반, 단계)이고, 미국식 ‘층’은 floor(바닥, 마루)이다. étage는 머리 위에 있는 천장 느낌이고, floor는 바닥 느낌이다. 1층의 경우, 미국식은 floor를 하나 밟고 있으니 1층이고, 프랑스식으로는 étage를 하나도 밟고 있지 않으니 0층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에밀리가 개똥을 밟은 장면이 있었다. 충분히 벌어질 만한 장면이었다. 법적으로 규제가 있기는 하다던데, 1990년 샹젤리제 거리에도 개똥이 널려 있었다. 변함이 없어 보인다. 프랑스를 굉장한 선진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 난 프랑스에 대해 좀 실망을 했었다.


내가 보았던 파리는 생각보다 지저분한 도시였다. 다니다 보면 오래되고 으슥한 지하철 통로를 만나기도 했다. 무섭기도 한데 다른 한쪽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어달라는 듯한 눈빛에 동전을 얼른 넣고 빠른 걸음으로 승강장을 향했던 적도 있다.       


파리 지하철의 허술한 모습도 기억난다. 어떤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옆쪽 승강장 끝을 보니, 승강장 끝 부분을 막는 장치도 없고, 주의 표시 하나 없었다. 여차하면 선로로 바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지하철이라 그러려니 이해하면서 다녔다. 그 당시 우리는 지하철 1,2호선 밖에 없었고, 파리의 지하철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이 드라마를 통해, 오래전 내가 머물었던 그때의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파리를 보았다. 반가웠지만 지금 나한테 파리에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할 것이다. 파리의 주택은 대부분 오래되고, 우리와 비교하면 깔끔하지 않은 집들이 많다. 게다가 집세까지 비싸서.... 그래도 가고 싶은 도시 순위로는 파리가 1위이다. 보고 또 봐도 볼 것이 남아있는 매력적인 도시니까 당연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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