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고향 경산에서의 첫 교직 생활(2) >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나의 고향 경산에서의 교직 생활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용기 있는 나의 행동 중 하나는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담임 선생님이셨던 수학 선생님은 이미 나의 모교를 떠나 대구의 한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계셨고, 나는 일부러 찾아뵈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여전하신 그 온화한 미소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들이 나에게 전혀 영향을 안 주신 것은 아니어서 그 해 스승의 날에 모교 방문을 하였다. 또 다른 한 수학 선생님은 우리에게 참 많은 인성을 가르쳐 주신 분이셨는데, 그분은 15년이 훌쩍 지난 이 작은 졸업생을 아직도 기억해 주셨다. 그러고는 따뜻하게 맞이해 주며 많은 이야기를 건네어 주셨다. 올해 스승의 날 문득 그 선생님이 기억나서 경북교육청 메신저를 통해 인사를 대신하였다. 참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은사님은 학교 행사로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하나의 문구를 던져 주시면서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의미를 나에게 주셨다. 그 말은 다음과 같다.
“교직은 제자들의 따뜻한 한마디를 먹고사는 천직이다.”
지금은 같은 재단의 중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하시며 이제 퇴직을 몇 년 앞두지 않으신 선생님의 이러한 문구에서 나는 많은 가르침을 또 받았다. 교사를 하면서 늘 헛헛했던 마음 한구석을 후벼 파주시는 이러한 문구를 통해 나의 나아갈 길에 대한 확신과 확고함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교사와 제자의 관계는 이렇게 평생 가는 거구나.’라는 깨우침과 함께 항상 교사는 제자에게 언제든 가르침을 안겨준다는 점을 배운 것 같다.
아무튼 나의 경산에서의 첫해는 학생들에 대한 복도 많았지만 나름 교직에서 영향을 많이 끼친 선생님들과의 만남도 큰 복이었다. 푸근한 큰 형님 같은 교무부장 선생님, 늘 입담이 넘쳐나고 넉살이 좋아 학부모님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미술과 창체 부장 선생님, 항상 주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건강을 위하는 보건 선생님, 특수학생들에 대해 늘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더 특수학생들의 적응을 위해 도우시는 특수반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 학생들과 몸으로 부대끼면서 즐거움을 찾으시고 줄넘기의 소중함을 안내해 주시는 환경부장 선생님, 온화하신 교감선생님, 불철주야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시는 교장 선생님 등 다양하고 가족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이러한 다양한 선생님들이 공존하기에, 그 다양한 아이들이 다양한 선생님들의 영향력을 받으면서 사회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하는 것은 아닐지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다양함의 소중함, 다양함에 대한 적응력, 그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고,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렇게 다양한 선생님들 중에서도 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두 선생님을 소개하려고 한다.
대학 입시 삼수라는 힘든 시간을 거친 끝에 대학교 후배가 된 한 살 아래 Z 선생님이 나와 함께 이 학교에 초빙교사로 부임을 받았다. 원래는 대학 시절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진지하게 수학 교사로서의 교직관에 대해 논의도 하였던 후배였다. 같은 스터디 그룹 후배 및 동기들과 함께 그렇게 서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을 하였고, 때론 서로의 고민이 있을 때는 소주잔을 같이 기울이면서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겨내기도 하였다. 가끔은 체력 증진과 휴식을 위해 함께 볼링도 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같이 재수를 하던 어느 시절 조금의 불화로 서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먼 소식에는 나보다 한 해 일찍 임용이 되었고, 군대를 다녀오고 청도 어느 학교에서 재직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사이가 멀어져 어색한 후배를 다시금 이 학교에서 같은 시기에 초빙교사로 부임하면서 재회를 한 것이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지만, 그래도 선배이고 한 살 많은 형이 굳이 꽁하게 있을 필요가 없겠단 생각에 어느 기회가 되는 자리에서 그동안 있었던 서로의 소원한 감정을 이제는 풀고 5년이라는 기간 동안 함께 잘해보자고 권유하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같이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배 교사는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나와 같이 방과 후 담당 계원의 역할을 하였다. 서로 소통의 필요성이 많아 늘 연락을 취하면서 함께 독려하고 서로의 가치관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지냈다. 후배지만 나름 가치관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다름의 미학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서로 다른 경산의 특수 목적고에서 각각 재직 중이지만 우연히 우리 동네로 이사와 서로 좋은 일과 힘든 일을 공유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바로 2학년 담임을 하면서 방과 후 부장을 맡은 S 선생님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굉장히 견제하면서 예의 깍듯하게 대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보다 4살 많은 형이면서 동 대학의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선배님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학연을 물꼬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나의 방과 후 부장에 더더군다나 교무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일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나의 2학년 담임으로서의 역할을 늘 옆에서 지켜봤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보다 교직 경력이 이미 7년 정도 더 많은 베테랑 교사였으며, 경북에서 벽지라고 할 수 있는 울릉도에서 3년의 경력을 가지고 경산으로 들어온 이 학교의 개교 멤버였다.(경북에서 울릉도 지역에서 경험을 하면 승진 가산점이 있어서 승진하기가 많이 수월하다. 그래서 승진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부장님과의 첫 만남 이후 제대로 된 대화는 3월 초 어느 회식 자리였다. 잔뜩 기대하고 간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서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조용히 음식만 먹고 조금의 술을 마시고는 일찍 자리를 나섰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아직 많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나는 초면에 낯가림이 많이 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투덜투덜 열심히 걸어오는 나의 귀가 길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김 선생님 저 S 부장인데요, 같이 조용히 술 한잔 더 하실래요?”라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 취기도 있어 보였지만 반가웠다. 그렇게 경산의 어느 한 술집 거리에서 만나 조용히 회 몇 점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에 대해 탐색하였고, 앞으로 서로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조금의 시간을 가지고 헤어졌다. 그 시점을 계기로 둘은 조금씩 친해지면서 술자리를 종종 가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방과 후 기획으로서 최선을 다해 부장님을 보필하려고 노력하였다. 몇 가지 되지 않는 소소한 것이지만 방과 후 업무를 보시는 부장님을 위해 업무 처리 순서를 정리한다거나, 복잡한 방과 후 비용 계산과 관련한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제공한다거나 하는 도움을 조금 준 듯하다. 나도 엑셀에는 젬병이지만 스스로가 수학에 매우 약하다는 S 부장님을 위해 이 정도는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늘 그렇게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익숙해진 담임과 업무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진 나는 폭주하듯이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고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시점에 어느 날 S 부장님과의 술자리에서 부장님이 내보고 이런 말을 했다. “김 쌤은 참 일도 잘하고, 담임 역할도 잘하고 배울 점이 많아요. 부러워요.” 그 때문인 것인지 그동안 억눌려 있으면서 늘 자신이 없었던 나의 모습이 폭발한 것인지 나의 자신감은 자만심으로 바뀌며 하늘을 찌를 듯 점점 더 자신감을 붙여 나갔다.
그 당시 우리 방과 후 부서 3명은 늘 방과 후 일에 치이면서도 자주 회식 자리를 가지며 학교 일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후배의 조심스러운 건의와 나의 당찬 건의와 생각보다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S 부장 선생님의 의견은 합이 잘 맞았다. 그리고 부장님의 경청하는 태도가 한낱 담임교사로만 있는 후배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우리가 부담 없이 방과 후와 관련된 다양한 건의를 하게 했고, 우리는 그러한 건의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방과 후 부서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규 시간표와 같이 흘러가는 통상적인 방식의 시간표를 통한 방과 후 수업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선택형 방과 후 수업을 실시하는 것은 어떨까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가 좋다면 분주하게 이에 대해 준비를 하자고 다짐하였다. 물론, 이미 선택형 방과 후 수업이 수년 전부터 실시되기 시작했고, 실시하는 학교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개교한 지 이제 2년 차인 우리 학교에서는 안정적인 방식만을 취하다 보니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는 선택형 방과 후 수업을 준비하면서 단순 교과만의 수업뿐만 아니라 예체능 등의 수업도 함께 도입하여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보장하고, 방과 후의 취지를 고등학교에서도 잘 살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렇게 2학기에 실시하는 방과 후 때는 선택형 방과 후가 실시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고, 부장님의 집 근처에 있는 우리의 단골 술집에서(지금은 사라져 아쉽긴 하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지 못해 많이 아쉽다.) 자주 술자리를 가지며 의견조율을 하였다. 사실 일이라는 것은 몇 명의 사람이 어울려 하다 보면 당연히 작은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늘 건의를 많이 하던 나의 의견을 부장 선생님이 쉽게 넘겨버린 적이 있었다. 결국 학생들이 방과 후 선택을 하는 날 우려했던 예상이 나타났고, 부장 선생님은 많은 후회감을 가졌다. 이후 다시 조정하여 제대로 된 운영의 결과를 내긴 하였지만 그때의 아쉬움은 늘 남는다. 왜냐하면, 바로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마도 부장 선생님에게 많은 부담감을 줬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한창 경청을 잘해주는 부장 선생님께 나는 나의 의견을 쏟아붓듯이 많이 던졌고, 나의 뜻대로 흘러가게 많이 유도했던 것 같다. 바로 그게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 일이라는 것은 절차도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서로를 헤아려야 되는데 내가 더 잘 낫고 내가 잘나서 이렇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에서 부장 선생님께 오해를 주었던 것이다. 이후 들은 이야기지만 그 당시 너무 폭주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부장 선생님이 끌려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몇몇 의견을 조금은 간과했다는 얘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을 나도 느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너무 자신감의 정도가 지나쳤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해에는 나름 많은 반성을 하면서 무엇이든 적당히 정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에서도 적재적소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 해에는 우리 세 명이 많이 으쌰으쌰 하면서 웃기도 하고, 심각해 보기도 하고, 학교를 위해 우리가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 마냥 열심히 지내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가 매개가 되어 우리들만의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고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후일담을 전해드리자면 사실 어떠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잘 계획하더라도 그 수업에 진심으로 대하는 학생들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많이 깨달았다. 참 허탈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세 명이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그 뜨거운 여름 그렇게 노력하였던 것이 허탈했지만 우리에겐 진하게 남는 여운 그것이 또 한 번 교사로서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 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마 이때도 나의 자신감이 많이 승천하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 부장 선생님과 많이 친해지고 있는 시기 언제쯤이었을까? 서로의 집도 알고, 서로의 성향도 좀 파악한 어느 날 내가 어느 정도 좀 취한 그날, 무턱대고 부장님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저녁을 좀 지난 시간이었다. 조금은 당황한 기색에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어준 부장님께 내가 드린 건 말 그대로 소주 한 박스와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쳐들어간 부장님 집에서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면서 놀라운 한 마디와 함께 소주 박스를 즐겁게 받아 든 부장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그날 밤에는 부장님 식구가 모두 자고 있는 집 부엌 한편에서 라면을 끓여 소주 몇 병을 마시고 온 기억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한 번씩 만나면 회자되고 재미있게 웃고 넘기는, 나란 사람이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끝나는 이야깃거리다.
나는 참 이 해에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복이 많았던 듯하다. 담임으로서도 나름 의미 있게 보냈고, 업무 처리에서도 더욱 자신감을 가지면서 학교 일 전반에 대해 자신을 과시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앞으로의 교직에 대해 다시금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였던 해였다. 매슬로우라는 학자가 말한 인간의 욕구 중 상위 단계에 놓인 인정욕구를 달성해서 그런지 나름 흡족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이란 인간도 타인을 통해 인정을 바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인정을 받으려고만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더욱 스스로에게 각인을 시키고 있다. 다시금 그러한 오만함을 펼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S 부장 선생님과 함께 약속한 바가 있다. 함께 3학년 담임으로 올라가서 학생들 입시지도에 열의를 다하면서 같이 동료 교사로서 잘 지내보자고. 하지만 부장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은 업무분장 회의에서 부장님은 답답함에 따로 연락을 하셨다.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여차저차한 상황에서 3학년에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대신 2학년 부장을 할 테니 한 해만 더 같이 2학년을 하고 같이 3학년을 올라가자고. 사실 나는 구미 인문계고를 떠나면서 아직 미완성이 된 나의 입시지도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고3 학생들의 입시지도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터라 참 많은 고민을 하였다. 제안을 뿌리치고 내가 하고 싶은 입시지도를 위해 고3 담임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좋은 부장 선생님과 함께 합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낼지 많은 고민이 되었으나, 나의 성향상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원하는 답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강했던 터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 해 더 2학년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한 해의 마무리와 함께 이듬해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