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자신감과 오만의 차이

< 좋은 사람들과의 학년 담임 생활 >

이듬해의 담임 구성은 내가 겪어본 교직 생활 중에서 최고였다. 물론 이면에는 S 부장님의 노력이 컸다. 업무분장을 위해 부장 모임에서 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어필하면서 좋으신 분들을 많이 섭외하려고 노력하였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해에는 S 부장님을 필두로, 조금은 톡톡 튀지만 아이디어가 많은 기획 선생님, 그리고 Z 교사, 나, 열정이 가득한 젊은 국어 선생님과 어느 정도의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 몇 분을 모시면서 신구의 조화를 적절히 하였다. 이 모든 선생님들 중에는 모가 나신 분도 없으셨고, 다들 학생들 지도를 위한 열정이 가득하신 분들이라서 학생들과 학년 담임 선생님들의 합도 잘 맞았다. 그렇게 평온한 한 해를 무사히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그해에는 내가 총무를 맡아 학년 모임도 자주 가지고, 특별한 장소로의 여행도 자주 떠났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떠나게 되는 수학여행에서도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많은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하였다. 지금 돌아보니, 그해에 우도로의 여행 중에 그 곱디고운 서빈백사에서 우리 반 남자아이들 몇 명이 작당 모의를 하고 나를 아름다운 바다 한가운데 내리꽂아 버렸던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날 쫄딱 젖은 우리들은 버스에 타면서 기사님께 엄청 혼도 났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사실 이 해에 선배 교사님들께 정의적으로 참 많은 것을 배운 해였다. 엄마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식과 같은 학생들을 대하는 선배 교사들의 따뜻한 마음가짐이 참 가슴을 울렸다. 2년간 내 옆자리에 앉아계신 50대 중반의 일반사회 남자 선생님께 언젠가 이런 말을 드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교직을 그렇게 오래 하시면서 힘드시기도 하실 테고, 조금씩 연세도 들어가시는데 어떻게 저렇게 철없고 어린아이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세요? 그래서 그런지 애들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제가 보고 배울 점이 많네요. 저는 아직 아이들이랑 마찰도 종종 있고, 선생님만큼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도 많아요.”

사실 이때 우리 학년 담임 선생님 중에서 가장 인기도 많으시고, 쉬는 시간마다 큰 아빠 대하듯 여고생들이 종종 찾아와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편하게 즐기다 가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기대에 부응하듯 선생님도 같이 아재 개그를 던져 주면서 허허 웃으시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러하신 선배 교사께서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신 말씀이 이랬다.

“김 쌤은 아직 젊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나도 김 쌤 보면서 많이 배우는 걸 뭐. 그렇게 열심히도 해보고 힘도 빼보고 하는 거지 뭐. 그런데 내 생각에는 교직이란 것이 꼭 배를 타는 것과 같아. 배를 타고 있으면서 파도에 맞서려면 멀미만 하잖아. 그러니깐 배를 탈 땐 파도를 받아들이고 흔들리는 배에 가만히 몸을 맡기면 되는 거야. 사는 것도 이런 것과 마찬가지야. 허허허”

나는 이 말씀에서 교직에서의 연륜을 많이 느꼈다. 흔들리는 배에 몸을 잘 맡겨라는 것. 그 말이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박혔다. 나중에 서로 학교를 떠나고 경산의 어느 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그 선배 교사가 그리워 이 말을 떠올리며 시를 한편 써서 보내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온 선배 교사의 말은 “시 참 잘 썼네. 근데 나는 요새 뭐 멀미도 좀 하려고 그래~”라고. 그 선배 교사의 소식은 몇 해 전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면서 더 전해 들을 수 없었다. 술을 참 좋아하시는 분이셨는데, 건강 탓에 그 좋아하시던 술도 끊으시고 무슨 재미로 사시는지 모르지만 그분의 향기가 은은히 느껴지는 하루다. 조금은 서툰 솜씨지만 그 선배 교사의 말을 떠올리면 써 본 소소한 시 한 편을 남겨본다.





선배교사가 말했다.


선배교사가 말했다.


교직은

학생이라는 배에 오르는 거라고.


세월이라는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기는 거라고.


자칫 흔들리는 배를 이기려다

멀미만 한다고.


삶도 그렇다고...





사실 아이들이 좋고 동료 교사들이 좋긴 하였지만 해마다 꼭 한 건씩 큰일이 일어난다. 그 일이 학교 내에서의 학생이 일으키는 큰 사건이건, 교사와 학생과의 마찰이건 무엇이든 꼭 하나씩 일어나기 마련이다. 바로 그해에 내 교직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무난하게 잘 흘러가던 우리 반에 유달리 학급의 아이들과 마찰을 많이 일으키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나는 늘 그 학생을 주시하면서 조언하였지만, 자체적으로 정화가 되기에는 그 한계가 온 것 같아 장시간의 진지한 상담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의 고집을 절대 굽히지 않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펼쳤다. 학생과의 상담 이후에도 또다시 학급 내에서 소소한 일들이 자꾸 불거지면서 결국 학부모를 불러 상담을 실시하였다. 학부모님과의 상담 또한 내가 의도한 대로 학생을 위한 상담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쉽지 않은 상담은 효과 없이 일단락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쌩하게 가버린 학부모님과 또 얼마가지 않아 학생의 문제로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자꾸 학생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를 적으로 판단하고 매우 공격적으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통화 내용을 녹음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편집하여 괴롭히는 등 한동안 나와 많은 씨름을 하였다. 결국 학부모와 학생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고립되는 상황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학생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괜찮다고 나를 다독거렸다. 다행인 것은 그날 이후 더 이상의 큰일은 없이 지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여러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아마도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늘 긴장 속에 살아오면서 겨우 부여잡았던 나의 긴장의 끈을 본의 아니게 터트렸나 보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가슴 두근거림과 호흡곤란 등으로 힘들었었다. 아무리 병원을 다녀봐도 심전도는 정상이었고, 이상이 없다는 소견만 돌아왔다. 더 이상의 조치가 없었던 나는 점점 병이 악화가 되면서 결국 공황 상태가 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정신병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신과를 다니면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 병명은 범불안장애였다. 사실 이 시기쯤에는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하나씩의 정신적 질병을 안고 있어서 더 이상 부끄러운 병은 아니었지만 나는 약을 복용하는 귀찮은 상황이 싫었고 병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꽤 괴로웠다. 아마도 이건 개인의 기질의 문제도 있었던 듯하다. 워낙 예민하게 태어났던 나로서는 늘 사소한 일에도 예민했었고, 더군다나 꼼꼼함의 끝판 왕인 수학을 전공하면서 늘 강박 속에서 수학 문제의 오류가 없는지 살펴야 했었고, 내가 살아온 시기의 무한경쟁 시대가 나의 이러한 예민한 성격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그런 나는 한해 한해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와의 마찰 속에서 꽤 많은 스트레스를 쌓아왔고, 그것의 폭발 지점이 바로 이때였던 듯하다. 사실 이러한 불안 장애는 쉽게 낫지가 않는다. 약을 꾸준히 복용도 해보고, 나아지면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통해 약을 끊어 보기도 했지만 나의 선천적인 기질과 긴장 속에서 일을 하는 나의 교직 생활 속에서 간혹 한 번씩 올라오는 불안장애는 완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간혹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올라오는 나의 이러한 증상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나쁜 일이 있다면 꼭 그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지 않던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학생들 또한 나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병을 모르고 지내는 아이들이 간혹 보인다. 그럴 때는 내가 먼저 권유도 해주고 공감도 해주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좋았다고 할까? 물론 그 병으로 인해 나의 몸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픈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해 줄 수 있으니 그것이면 나에게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또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의 2년 차 생활이 마무리되고 겨울방학을 보내면서 3년 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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