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간의 고3 담임으로서의 생활 >
경산으로 부임받고는 3년째에 접어들어 다시 고3 담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구미에서의 짧은 1년간의 고3 담임 경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2년간 2학년 담임을 하면서 꾸준히 학생들의 입시지도에 대해 늘 신경을 쓰면서 입시의 움직임에 대해 간간이 신경을 쓰고 있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고3 담임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여전히 열의가 많았던 나로서는 나에게 의미 있는 자료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대학별로 그 해 모집 요강이 발표되는 5~6월과 전년도 수시 입시 결과가 발표되는 7~8월 각 시기별로 수도권대학과 지방 거점 대학들을 중심으로 총 100개의 대학들에 대한 모집 요강과 입시 결과를 정리해서 나만의 엑셀 파일로 만들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서 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지만 내 나름의 특유의 과제 집착력이 꼬박 열흘씩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 내게 하였다. 이러한 엑셀 파일은 이 학교에서 남은 3년간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늘 했던 작업이었다. 특히 학생들에게 입시지도를 할 때, 나는 유용하게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선생님들도 필요할지 몰라서 공유는 하였지만 어떻게 사용을 하셨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또 3년간 3학년 담임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교사로 자리매김하려고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지금은 누적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대학 입시 상담을 해줄 때는 유용한 경험이 되곤 한다. 그 해와 이듬해까지는 우리의 삼총사 S 부장님, Z 후배와 함께 늘 든든히 옆을 서로 지켜주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고3 생활을 보낸 것은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고 있다.
아마 그렇게 고3 담임을 하는 동안 아이들 또한 입시에 대한 부담감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에 늘 지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기온은 급상승하였고, 한여름에는 학생 대다수가 지친 그 자체로 생활하였다. 그렇게 부단히 도 더위를 이겨내려고 노력한 우리들은 겨우 한 여름을 이겨내고 나면 발등에 떨어진 대입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이러한 한 여름의 더위를 보내는 그 시기에 지쳐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쓴 작은 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근무한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한여름이 되면 늘 지쳐 있다. 아무리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줘도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의 오후 시간은 모두가 녹초가 된다. 그러한 모습은 항상 반복이었다. 어느 학년이든, 어느 반을 가든. 아니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학교든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기분과 느낌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어서 아주 소소한 시 한 편을 쓰게 하였다.
한여름의 6교시
4교시가 마치고 점심시간이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나도 배를 채우고 몸을 잠시 기댄다.
나른한 오후 시간 몸이 처진다.
겨우 충전해서 6교시에 들어가려 한다.
심기일전해서 문을 열며 인사한다.
안녕 하...... 숙연해진다.
강력한 햇볕을 가리는 블라인드
시원한 냉기가 줄곧 나오는 에어컨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한 교실에
혼자 시끄럽게 돌아가는 선풍기
반쯤 꺼진 전등.
사람은 스물댓 명 그러나 아무도 없다.
잠을 이기려 키 높이 책상에 서 있는 학생 한 명만
멀뚱히 나를 쳐다본다.
이따금 눈치 보고 다시 엎드리는 아이들.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자세의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래! 자습이다! 아니. 잘 자라!
괜히 이전 시간 선생님이 야속하고 고맙다.
이렇게 무사히 흘러가던 경산에서의 4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에는 S 부장님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멀리 떠나지는 않고 경산의 가까운 또 다른 한 고등학교로의 이동이지만,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4년을 보낸 시간이 참 아련했다. 그리고 부장으로 4년을 모시면서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 내가 새롭게 만날 부장 선생님이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신학기 준비를 위한 기간이 도래하는 어느 시점이었다. 평소 온화하고 정이 넘치는 교감 선생님이 난데없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평소 관리자와의 접점이 없던 터라 왜 그러실까 많은 의문을 안고 찾아뵈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년 부장 인선 작업을 위해 나를 불렀는데, 나보고 대뜸 고3 부장을 맡아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왜일까? 이제 고작 해봐야 교직 10년 차에 접어들려는 교사에게. 그리고 고3 경험이라고는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사실 교직을 시작하고 구미, 경산을 거치면서 늘 나는 학교에서 나이 순서대로 따지면 밑에서 헤아리는 것이 더 빠른 어린 교사였다. 아직 한 번도 부장이라는 자리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하였고, 우선 생각을 해본다고 하였지만 사실상 마음속에서는 아직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였다. 물론 교감 선생님이 바라보시기에 내가 성실하고, 고3 담임을 이 학교에서 2년간 연달아하면서 자연스럽게 3년째에 부장을 하면 적당하다고 판단하셨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게 나를 높이 평가 내려주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린 나로서는(그 당시 나이 39살을 향하는 시점이었다.) 10개 반의 부장 역할을 하기에는 스스로가 부족해 보여 거절하였다. 교감 선생님은 삼고초려를 하셨으나 나는 기어이 그 삼고초려를 다 마다해 버리면서 죄송한 마음만 가득했다. 결국 나는 다시 평범한 3학년 담임교사로 남게 되었다. 그 당시 나도 이제는 학교를 옮기게 되면 부장 역할을 맡아야 할 시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씩 나이에 맞게 나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부장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주변을 잘 관찰하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그런 부장이 되리라고 마음을 먹은 듯하다.
새 학년이 시작할 그해에는 우리나라에 또 큰 사건이 발생한 시기였다. 바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였다. 마스크 대란도 일어나고, 옆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서로가 바이러스처럼 취급하고, 서로를 경계하던 그런 시기였다. 국가에서는 비상 상황으로 간주했고, 사람들은 서로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극도로 조심하던 그런 시기였다. 그해에는 심지어 유례에도 없던 학교 개교가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게 교사와 학생들은 거의 3월 한 달간을 대책 없이 각자의 집에서 조심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기간을 가졌다. 지금 돌아보니 내가 그 해의 부장 선생님이 되었다면 아직 어린 탓에 이런저런 상황들을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에 잘 거절했다는 자기 합리화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있다. 무기한 연장만 될 줄 알았던 학교의 개학 날짜는 3월 말 언저리쯤으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로가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채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만나고, 최대한 접촉을 피하면서 수업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란 것은 어떠한 무서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마스크를 착용한 어색한 얼굴 속에서도 서로의 정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며 생활한 한 해였던 것 같다. 사실 그 해의 우리 반 졸업생들의 얼굴이 간혹 가물가물 거린다. 그 점은 아쉽지만 졸업 이후 학교 밖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온기는 지나가다가도 간혹 느끼고 따뜻한 인사에 서로를 넌지시 알아보곤 하였다. 나의 경산에서의 첫 학교의 5년은 이렇게 마무리되면서 나는 초빙 계약기간 5년을 꾸역꾸역 채우고 다음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고마웠고, 많이 정들었다. 나의 경산에서의 첫 학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