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자신감과 오만의 차이

< 나의 고향 경산에서의 첫 교직 생활(1) >

이제 교직을 시작하고 6년 차에 고작 3번째의 학교지만 떠날 때마다 각 학교에서의 만기를 다 채우지 않고 떠나서인지 조금의 아쉬움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구미 인문계고로의 이동 때보다 고향으로의 인사이동은 나에게 매우 큰 흡족함과 기대감을 제공하였다. 과연 내가 나온 경산이라는 소도시 아이들의 수준은 어떨지, 그리고 옮기는 학교의 수준과 교사들의 관계는 어떨지, 그러한 기대감들이 나에게 새롭게 시작하는 학교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가짐을 북돋워 주었다. 내가 초빙교사로 이동하게 된 학교는 기존에는 없었던 개교 2년 차의 신입 학교였다. 아마도 여고를 표방하면서 개교가 된 학교인듯했지만 최근 학교 설립 시 보통 남녀공학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남녀공학으로 개교가 된듯했다. 학교 시설은 아담하면서도 깔끔했고, 학생 수는 10개 학반이라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율이 1:4 정도로 꽤 차이가 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개교 멤버였던 선생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개교 학교의 멤버가 되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 인근 학교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름 선생님들 간의 갈등도 많았지만 힘든 상황을 함께 해온 선생님들 사이에서 뭔가의 끈끈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개교 2년 차의 학교에 개교 멤버 다음으로 투입이 된 것이다.

교직원끼리의 첫 만남을 가지는 2월 중순 어느 날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느껴보고 선생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이 학교에서의 5년간의 생활에 대한 포부를 나름 가지면서 최선을 다하고자 의지를 다져보았다. 사실 나는 이 학교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아담하지만 깔끔하고 정돈된 이 학교의 모습이 나를 매우 흡족하게 한 것 같다. 또한, 기존 선생님들이 편안하게 반겨주는 그 모습들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만남을 가지는 첫날 업무분장이 발표되었고, 나는 개교 멤버 학생인 2학년 담임이 되었다. 2학년 8반 담임에 대한 기대를 앉고서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또 하나의 업무는 학년별 방과 후 담당이라는 방과 후 계원이었다. 그렇게 2학년 부장 선생님과의 인사, 그리고 방과 후 부장 선생님과의 인사를 시작으로 이 학교에서의 인연은 시작이 되었다. 여기서 조금 독특했던 것은 방과 후 부장 선생님은 보통 업무부장으로 비담임을 하는데 같은 2학년 담임을 하면서 부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그러한 포지션을 취하는 방과 후 부장 선생님이 참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방과 후 부장 선생님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비담임을 한 적이 없었고, 스스로 담임을 자처하면서 담임은 교사의 꽃이라는 말을 하며 자부심을 가진 대단한 분이셨다. 그렇게 나의 교직 생활에서 E 선생님 이후 또 나의 교직관에 많은 변화를 주고 영향을 미치면서 함께 인연을 맺어간 나의 방과 후 부장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좋은 선물이었다고 지금도 회상한다.

짧지 않은 교직 생활 속에서 5년간 담임의 경험을 하고 나름 세 번째의 학교에 오면서 6년 차의 담임을 시작하는 그런 해였다. 기존에는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뭔가를 배우기에 집중하였다면 나름 이 학교에서는 나의 교육적 가치관과 철학을 조금씩 우리 반에 펼치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도록 학생들을 이끌어 나가리라 스스로 다짐을 하였던 것 같다. 첫날 2-8반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아마도 나는 이렇게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착한 심성,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을 가져라고. 사실 이러한 나의 가치관의 성립에는 우리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 이 가치관은 어머니가 늘 나에게 말씀을 해주신 3가지였다. 어릴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녀를 키우고 많은 조카들을 보면서 학급 학생들이 나의 자식, 조카 같은 마음이 드니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건강과, 올바른 사람, 그리고 성실감을 가지는 학생이 되길 요청했다. 그것이 앞으로의 삶에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느끼고 확신한다. 물론 혹자들은 공부를 잘해서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 취업을 잘하고 돈을 잘 벌어야 행복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많이 바뀌었고, 행복의 가치관과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삶의 중심에는 바로 개개인이라는 사람 자신이 존재해야 하며, ‘돈에 쫓기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육체를 많이 움직이고,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해 사색을 하고, 또한, 삶에 성실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라고 감히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이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이러한 나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갈 것이다. 바로 그 해 그때부터 뭔가 확고히 해온 것 같다.

이러한 모토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보살피면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기 초 상담을 실시하였다. 그 순수하고 어린 여고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함께 공감하고 웃고 울면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경산 지역의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다이내믹한 가정환경과 상황들에 많이 놓여 있었다. 한부모 가정,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 넉넉한 가정, 평범하지만 가정에 불화가 있는 가정, 데면데면한 가정 등등 여러 상황을 만났다. 하지만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받아들이면서 또한 긍정적으로 넘어가려는 그런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의 부모들이 이러한 자녀의 마음을 한 번만 더 헤아리고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긴 하였다. 아무튼 그 해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순수한 여고생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반에서 일어나는 일이 특별히 없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지역 어느 학교에서든 집단이 이루어지면 거기서의 마찰은 분명히 존재하고,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면, 학반의 분위기를 주로 이끌어가는 대여섯 명의 목소리 큰 여고생들의 집단, 묵묵히 학업에 집중하고 주변을 살피는 소수의 몇몇 모범생들, 학교를 의무감으로 다니는 의욕 없는 다수의 아이들, 개중에는 자신의 목표가 있어서 예체능으로 목표를 가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 두는 아이들 등등. 현실적인 한 반 아이들의 구성이 그대로였다. 아무튼 나는 그러한 학생들을 그런대로 이야기만 들어주기에는 조금 현실적인 부분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아직은 부족하지만 전년도에 배운 입시지도 경험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1학년 때 받은 성적을 나름의 엑셀 파일로 산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당하는 대학 학교 홈페이지 입시 결과를 뒤적이면서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미래로의 발판에 대해 마련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은 많이 부족했지만, 내 나름대로 입시지도에 대한 노력도 더 하고 싶었고, 전년도에 배웠던 입시지도에 대해서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터라 이러한 지도를 하게 되었다. 특히, 동기지만 E 선생님의 능수능란한 대입에 관한 입시지도 능력이 부러워서 거기에 준할 만큼의 나의 시선도 기르고 싶었던 욕심도 반드시 있었으리라. 아무튼 이러한 나의 마음이 통했는지 아이들 사이에는 꼼꼼히 잘 챙겨주고 상담을 잘해주시는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고, 아이들 또한 매우 흡족해하면서 나름의 동기부여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누구보다 더욱 노력하는 교사가 되리라 마음을 먹으면서 한 발짝씩 내딛기 시작하였다.

그 해 나의 기억에 남는 아이들은 28명쯤 되던 우리 학반 아이들 모두 다. 그중에 몇몇 사례에 해당하는 아이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유달리 뽀얀 피부의 순수한 여고생의 모습을 보이는 열심히 하는 착한 한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즐기면서 주변 친구들을 많이 살피는 참 착한 아이였다. 학기 초 학급 반장 선거에서 이 학생이 반장이 되면서 나 또한 학생과의 교류가 잦아져 자연스레 학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조금은 여유롭지 못해 보였지만 참 바른 학생이었다. 특히, 학교 교육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였고, 주변을 돌보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해심이 넓은 학생이었다. 교육대학교로의 진로를 꿈꾸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학생이었다. 때론, 나에게 와서 잔소리도 하는 학생이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끔 술을 먹고 다음 날 출근을 하면 술을 좀 적당히 먹어라는 둥, 군시절부터 피워오던 흡연 습관을 끊지 못해 간혹 담배를 피우고 오면 담배 좀 끊으시라는 둥. 나름 시어머니 같았지만 교사와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담임 선생님의 건강을 신경 써주는 학생이 밉기보다는 오히려 고맙고 이뻤다. 이런 학생에게도 딱 하나 고민이 있었다면 수학 성적이 쉽게 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육대학교로의 진학을 위해서는 충분한 내신 성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항상 그 언저리에 놓인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학생에 대한 격려와 필요시 학업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격려를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국 이 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꿈꾸던 교육대학교로의 진학을 하였고, 일 년에 꼭 한 두 번씩은 연락을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동안 소식을 따로 듣지는 못했지만 임용에 몇 번 낙방을 하면서 낙심을 한 부분이 커 보였다. 하지만 이내 좋은 소식으로 올해 연락이 닿아 초등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다른 학생들은 바로 다섯 명 정도의 왈가닥 스타일의 여학생 무리였다. 서로의 개성이 강했지만 그래도 서로 보완하면서 잘 지내고 학급의 분위기를 많이 이끌어 갔다. 하지만 문제는 이 학생들이 늘 낙천적이고 즐거움만을 추구하다 보니 그 도가 지나쳐서 학급의 학습 분위기를 종종 저해하였던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반장이 자주 이러한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조심하자고 하였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고 반장과의 마찰을 일으키면서 반장은 늘 자주 울고 속상해했다. 언젠가 그러한 반장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오히려 그 학생의 넓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학생도 스스로가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 학생의 말은 이랬다. “어떻게 보면 공부에 흥미가 없는데, 계속 조용히 좀 해주고 주변을 배려해 달라고 한들 그 아이들에게 그 말이 의미 있게 들리겠어요?” 하였던 것이다. 분명 맞는 말이다. 반장은 그 다섯 학생의 배려심이 떨어지는 부분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반장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렇게 반장과 왈가닥 패밀리들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계속되었지만 마무리는 나쁘지 않게 지어졌던 것 같다.

그 해를 돌아보면 참 마음 따뜻한 아이들 속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던 해였던 것 같다. 스승의 날과 나의 생일날 깜짝 파티를 해주면서 감사의 인사를 나눠주던 그 아이들. 시간이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그때가 참 교직 생활 중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몇 안 되는 해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해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늘 인간적으로 장난스럽게 많이 대하던 나에게 학생 단체 움직임이 발생했던 일이 있었다. 어느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봐도 너무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싫은 어떤 날, 야간자율학습 감독은 아니었지만 늘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업무를 보고 퇴근하던 일상 속에서 하루는 자습 시작종이 울리고 아이들을 체크하러 반에 들렀다. 그런데,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 칠판에는 오만 낙서들이 적혀있었다. “선생님 저희 오늘 째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내일 올게요~” 등등의 문구. 그리고 학급에는 눈치만 살피는 서너 명의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 20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단체로 야자를 쨌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약간의 언질 한 번 없이 도망을 가버린 아이들이 순간 야속했고, 젊은 혈기에 어떻게든 이 일을 바로 잡아 기강을 확립해야겠다는 꼰대 마인드가 발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남은 학생들과 함께 급히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이내에 도망간 학생들 전원 학반 복도로 집결하라고, 그러지 않을 시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후폭풍을 스스로 감수하라고. 그렇게 안내가 나가고 30분 안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돌아왔고, 정확히 1시간 이내에 멀리 가버린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집결했다. 물론 체벌을 해서는 안되지만 가볍게 도망에 대한 죄로서 오는 순서대로 손을 들고 복도에 서게 하였다. 그리고는 엄하게 혼을 내고 기어코 자신에게 주어진 자습 시간 마침 종이 울릴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가게 하였다. 참 별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왜 그랬을까 후회도 된다. 하지만 학생들이 졸업하고 경산의 동네 여기저기서 만나면 꼭 그 이야기를 회자하면서 서로의 추억으로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런 즐거운 소제 거리 하나로 넘겨 가는 그 시절 추억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좋은 가십거리가 남았으니 그것이면 되었다고 이제는 그렇게 넘기고 있다. 이렇게 나는 그 해에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지만 좋은 학생들을 통해 마음 따뜻한 한 해를 보냈다. 이 시기의 일을 기반으로 종종 일어나는 야간자율학습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소소한 시를 한 편 써 보았다. 가볍게 웃고 넘기면서 야간자율학습과 관련한 선생님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시 한 편 남겨보겠다.




야자


학기 초 학구열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오늘도 빈 의자만 그 자리를 지키네.

담임이 억지로 하란 것도 아닌데.

네가 한다해놓고

이럴 거면 왜 신청했니?


월요일엔 머리 아파 화요일엔 배가 아파

수요일엔 학원 가고 목요일엔 엄마생일

금요일엔 그냥 없다.

누가 하란 것도 아닌데.

이럴 거면 왜 신청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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