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군입대 후
11월로 접어들자 산골의 날씨는 추워졌다. 아침저녁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만 했다.부모님이 계시는 안방과 내가 아이와 생활하고 있는 사랑방은 부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별도로 불을 넣어야 했다. 내가 불을 피우면 불은 안피고 연기만 났다. 그래서 아버님이 아침저녁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버님이 불을 지핀 사랑방은 늘 아늑하고 따뜻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냈다. 부모님은 아이가 손을 타면 손끝에만 있게 된다며, 조금 울더라도 눕혀 놓으라고 했지만, 남편이 없는 빈자리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우려는 듯 조금만 울어도 안고 지냈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즈음 하루에 한 번 꼭 집 앞을 지나가는 우체부 아저씨가 소포를 가져왔다. 주소를 살피니 처음 들어보는 주소로 사서함 몇 호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님은 아범의 소지품일 거라며 풀어 보라고 하셨다.
아버님의 예측대로 신랑의 옷과 신발이었다.
종이에 쌓인 소포를 풀면서 어머니를 쳐다보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다.
남편이 입대하던 날 덤덤했던 나도 남편의 신발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좋은 신발도 아닌 걸 그냥 버리면 되는 걸 왜 보내서 사람 마음을 이렇게 만들어 놓는지.....훈련소에서 한 참 훈련을 받고 있는 남편에게 핑계를 돌렸다.
이어 나는 잔뜩 기대를 걸며 소포의 꾸러미 속에서 " 잘 도착하였다, 걱정하지 마라"라는 안부라도 묻는 편지가 있는지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허탈했다. 배달되오 온 소포 종이에 그대로 싸서 창고에 휙 던져 버렸다.
아이가 2개월을 넘으면서 우는 횟수도 늘어나고, 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먹으려고만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님이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젖이 모라자 배불리 먹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산골에서 분유를 사러 가는 것도 힘들고, 형편이 어려웠던지라 분유로 대체하기도 힘들었다. 늘 아이는 칭얼대고 먹고자 하였다.
남편이 군 입대 전 사다 준 육아책에는 몇 개월이면 무엇을 먹이고, 이유식은 언제 하고, 목욕은 매일 시켜야 한다는 육아 정보가 가득 했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유식을 하기는 이른 3개월짜리 아이에게 밥 물에 설탕을 타서 먹이기도 하고,밥풀을 짓이겨 먹이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를 삶아 으깨어 물을 섞어 연하게 하여 먹이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가 묽은 대변을 보며 밤새 잠을 자지 않았다.. 가끔 어머님은 밥을 씹어 아이에게 먹이는 것도 같았다. 아이는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몸이 약했다. 세윌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이젠 남편이야 제대를 하던지 말던지 안중에도 없고,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아이에게는 직장 생활을 하는 고모가 3분이 계셨다. 고모들은 명절 때마다 옷 선물을 해주셨다. 그 덕분에 옷은 넉넉하게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세탁이 문제였다. 산골의 겨울은 정말 살을 에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추웠다. 칼바람에 살을 베이는 듯한 추위는 방금 설거지 해놓은 그릇끼리 달라붙게하고, 설거지 하는 동안에도 물 밖으로 손이 나오면 손에도 그릇이 달라 붙었다.
이런 상황에 아이의 목욕을 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읍내 목욕탕을 가려 해도 한겨울에는 읍내로 나가는 경운기가 없었다. 아이를 들쳐 업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재를 넘어 갔다 온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아이의 기저귀였다. 수량도 많지 않은데, 미쳐 마르지 않아 햇볕에 그대로 말려 사용 하기도 하고,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맨바닥에 누인적도 있었다.
지 눈 지가 찔러 고생한다는 엄마의 말이 이럴 땐 꼭 떠올랐다. 공연히 천장을 올려다 보면 백열등이 속도 모르고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엄마는 정말 나를 고소해 할까? 생각하면서 조그맣고 가볍고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추운 겨울이 끝나면 이곳 산골 마을에도 따스한 봄이 올 것이다. 그러면 아이도 밥을 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기저귀 빨래 걱정 안 해도 되겠지....라는 희망을 걸고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책상위에 놓인 작은 달력은 12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간 남편으로부터 첫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