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는 방송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텔레비젼 방송이 수신되는 채널은 KBS 가 다였다. 그것도 신랑이 군대 가기전 제대로 해놓겠다고 하며 방송수신을 잡으려고 신랑은 지붕 위에서, 아버님은 마당에서, 나는 방에서 티브이 화면을 보며, 서로 릴레이 중계를 하며 안테나의 위치를 찾았다. TV 안테나를 지붕 위의 이쪽 저쪽으로 다니며, 방향을 잡아 제일 잘 나오는 곳인 지붕 끝에 비스듬히 겨우 매달아 놓았다.
안테나를 설치하였기에 그나마도 흑백 TV 이를 볼 수 있었다. 화면은 잘 안 나와도 말소리는 나오니 적막한 산골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 목소리였다. 한 방송사 뿐인 방송이라도 보지 않으면 세상과도 단절이 되는 느낌이라 습관적으로 켜 놓았다.
산골의 밤은 깊고 무료했다. 산골은 온통 적막강산이었다. 저녁 설거지을 하고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충천에 떠 있었다. 중천에 떠 있는 하얀 달은 안 그래도 적막강산인 산골을 더 조용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집안의 중심은 아이였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식구들 모두가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옹알이하면 같이 말을 건네고, 울면 어디가 아픈지 걱정하고, 마치 우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도록 짜여 있는 로봇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아이는 집안의 어른이자 중심이었다.
신랑이 군대를 가고 이제 두 달을 넘어서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3일 후면 2달째 되는 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성탄 축하 카드를 지인들에게 만들어 보내면서 그동안의 안부와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육아에 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신랑이 없어서 흥이 나질 않아 그만두었다. 대신 연하장으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누가 장에 간다고 하면 부탁할 예정이었다.
겨울이 되자 매일 지나다니던 우체부 아저씨도 3일이나 5일에 한 번씩 다녀갔다. 우체부 아저씨는 우리 집엔 볼 일이 없어 들리지 않았지만, 집앞 길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의 아저시를 보며 오늘도 또 하루가 지나가는 군아 생각했다. 나중 안 사실이지만 산골에 우체부 아저씨가 매일 오셨던 이유는 주민계도용 신문을 이장한테 배달하기 위하였던 것이다.
평상시 처럼 우체부 아저씨가 윗동네로 올라가는 군아 생각하면서 마루에 서서 담 너머로 보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우고, 우편 가방에서 봉투를 찾아 , 하얀 봉투를 하나 들고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을 오려나, 내일이면 오겠지.. 하던 차에 한 걸음에 달려 나가다 뒤엄밭에 자빠질뻔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니 일부종사하라던 친정아버지의 편지를 배달했던 그 아저씨였다. 예상대로 신랑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부모님에게 마음을 들킬라 조심하며 두근두근 편지 봉투를 뜯었다.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등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자대 배치를 받으려고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만 적혀 있었다.
내 안부는 편지지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 말로 표현하는 사람도 아니고, 부모님도 계시고 하니, 아이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나의 안부를 대신 물은 것이 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편지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읽을 사람도 아닌데, 이 인간 제대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 되면서 못내 서운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어머님은 아범이 자대를 배치받으면 아기를 데리고 한번 면회를 가자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양구의 모 사단 본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나는 면회를 가고 싶어서 부모님의 눈치를 살폈다. 날이 좋으면 가기로 확답을 받고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지 야속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큰 숫자인 날짜 아래 농사의 일정을 작은 글자로 적어 놓은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건지 한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어머님이 3월이면 농사로 바빠질 테니 그전에 아범 면회를 다녀오자고 했다. 장날에 어머님을 따라 목욕탕에서 지난겨울의 묵은 때를 벗기고, 조금씩 여자로 성장해가는 아이의 옷도 준비를 했다.
새벽에 아이를 들쳐 없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면회소 앞에 도착했다. 면회 대기소에서는 2명의 군인이 있었다. 면회 신청서를 쓰고 있는데, 군인들이 나를 쳐다보며 관계를 물었다. 웬 여자가 아이를 않고 떡 하니 면회를 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도 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지 언제 나오느냐고 몇 번이나 대기소 군인에게 물었다. 대기소
에 앉아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훅 들어오며 낯선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