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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Feb 08. 2024

 님을 만나기러 가는길 나전역



정선 나전역은 행정구역으로는 북평면으로 정선역과 아우라지 역의 중간역이다.  철로는 깊은 산골마을을 가로질러 아우라지역과 정선역으로 향한다.  


35년전 온마을을 쨍하고 갈라놓을 것만 같은 냉동고보다 더한 추위가 하루종일 기승을 부리던 날 나는 아우라지역(당시: 여량역)으로 가기 위해 나전역에 서 있었다.




 나전역으로 가기 위해 진부터미널에서 1시 30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근무를 끝내고 아이랑 남편을 만나기 위해 여량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터미널에는 이따금씩 버스가 들어오고, 정류장에는 고추 두렁을 덮었던 검은 비닐과 찢어진 신문이 바람에게 몸을 맡기기라도 한 듯이 높이 떠 올랐다가 인근 주택 지붕 위로 날아다녔다.


 바람은 정류장의 흙먼지도 사방으로 몰아넣었다. 먼지가 눈 속으로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대합실로 들어왔다.


대합실은 뽀얀 연기가 가득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저씨들이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이를 업고 들어온 나를 본 아저씨들이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 보더니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춥고 흙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으로 다시 나갈 수도 없어서 담배연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업고 있던 아이의  포대기를 머리 위까지 바싹 잡아당겼다.



매표소 앞에는 나무의자가 앞뒤로 나란히 있었는데, 의자에는 사람대신 알록달록한 보따리, 흙물이 들어 더 이상 지지 않을 것처럼 흔적을 남긴 보따리, 비료포대들이 대신 앉아 있었다.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 창밖을 내다보며 버스 오기만을 기다렸다.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답답한지 등에서 꼬물꼬물 거렸다. 작은 대합실에 사람도 많고, 담배연기도 가득하여 어쩔 수 없이 인근 문구점으로 들어가서, 풍선을 하나 사고, 끈을 매달아 아이의 손목에 묶어 주었다.


그리고 1시 20분 나전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전역이 있는 강원도 정선은 초행길이었다.


어릴 때 철광에 다니던 아버지에게서  정선은 탄광이 많은 오지 중 오지라는 이야기와 하루종일 가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도로 옆으로 흐르는 강뿐이었고, 정류장이 있는 곳에만 서너 집이 어우러져 있었고, 겨우겨우 한 채씩 있는 집은 산아래로 있었다.


집도 띄엄띄엄 있고, 산중으로 가는길이기에 지난주 집에 온 남편에게 이번주 토요일 아이를 데리고 여량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더라도 실제로 내가 오는지, 몇 시에 출발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집에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한번 만날 때마다 약속을 단단히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정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을 만나러 가면서도 약속을 잊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이와 함께 간다고 했으니 역에 나와 있겠지?  만약 배웅을 나오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남편이 직장을 잡으면서 집을 얻은 여량에는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온갖 염려가 떠올랐다.  


아이는 나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다.


2시간 여가 지나 나전 정류장에 도착하여, 여량역으로 가기 위해 나전역으로 향했다.


 나전은 진부보다 더한 산골로 이미 날은  어둑어둑 해졌다.기온은 더 내려 가 있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전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구입하고, 밖으로 나가 기차를 기다렸다. 십 분도 채 서 있지 않았는데 발이 시렸고, 얼굴은 살이 금방이라도 금이 갈 것 같이 쨍한 바람에 금세 얼음장이 되고 붉어지기 시작했다.


기차시간이 정해져 있음에도 밖으로 나간 것은  등에 업힌 아이를  제 아빠에게 몇 분이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보고 좋아할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고,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내 얼굴만은  더욱더 붉어져  화끈 거렸다.


꼬물꼬물거리는 포대기 속 아이의 발은  얼음장이 되어 있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역내에는 서너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 역무원 사무실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었다.         


왠 젊은 여자가 갓난아이를 업고 대합실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길 하자


" 이 추운 엄동설한에 갓난아이를 업고 어디를 가느냐, 친정으로 가느냐, 애 아빠는 어디 있냐. 기차시간이 아직 안 되었으니 아이를 내려 편하게 있어라." 어르신들이 묻기 시작했다.      


" 예, 아이 아빠가 여량에서 일하고 있어서,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 아 그렇군요. 하도 왔다 갔다 하길래 애 들쳐 없고 어디론가 도망가는 줄 알았네 그려. ㅎㅎ"


젊은 여인네가 보따리 하나에,  애를 업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대합실을 들락거리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량에서 20여분 거리에 와 있어서인지 마음이 더 급해졌고, 실제로 도망가는 여인의 마음이 된 것도 같았다


습기가 찬 대합실 창문 너머의 마을은 깜깜해졌고, 조용한 불빛 만이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것을 신호 하는 것 같았다.

 

등에 업힌 아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와서 들쳐 없기를 수차레.. 배가 고파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  이제 기차만 타면 돼, 아빠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빠 만나서 맛있것도 먹고, 아빠랑 재미있게 놀자  "


레일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기차가 고개를 내밀고 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차가 멈추었고,  열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내리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기차에 올랐다. 가슴이 점점 부풀어져 기차위로 오르는 발판이 구름위를 걷는듯 하였다.



다시  붉어지는 얼굴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주체할 수는 없는 젊은 여인과 옹알이를 하는 햇아기를 싣고 기적소리를 울리며 기차는  여량역(현재 아우라지역)으로 출발했다.       


다음이야기는 여량역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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