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자가 된 지 2년 반.
처음엔 모두가 부러워했다.
“편한 백성이 되었구나!”라며 웃으며 축하해 주었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삼식이’라는 이름표를 스스로에게 붙이게 되었다. 세끼를 챙겨야 하는, 어쩌면 평생 처음으로 스스로를 감시하고 얽매는 이름이었다.
아침 한 끼를 생략하려고 해도, 세끼를 챙기려 해도 부담스러웠다. 바깥으로 나갈 때면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울 속에서 핏기 없는 낯선 얼굴이 나를 쏘아본다. 흰머리는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목에는 주름 하나가 더 생겼다.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지방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왼쪽 다리가 욱신거렸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러다 걸음의 자유마저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온 60년의 세월,
세월이 심술궂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까지 냉혹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시간이 나를 벗어나고 있었다.
함께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았지만, 이름들은 머릿속에서 들숨과 날숨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억마저 점점 쇠퇴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직장처럼 시무식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연초마다 직장에서 하던 시무식은 반복적인 형식에 불과했지만, 묘하게도 마음을 새롭게 다잡게 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행하며, 성과를 돌아보던 그 과정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백수에게도 시무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나만의 시무식을 만들고, 시간을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연초가 되면 직장에서는 시무식을 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시무식을 하게 되면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과 같은 느낌이 들고, 올해는 좋은 성과를 내어 보아야지 하는 각오도 하게 된다.
백수도 시무식을 하지 말는 법이 어디 있는가?
직장 다닐 때처럼 시무식이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업무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시무식의 매뉴얼을 정하고, 하루일과, 한 달 계획과 성과, 분기별 계획과 성과, 연말 총결산을 통해 나만의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실천해 나가 보는 것이다.
� 백수의 시무식
✔️일시와 시간: 2025년 1월 6일, 오전 5시
✔️장소: 서재
✔️ 내용
- 05:00 ~ 05:10: 간단한 스트레칭,
음양탕 마시기, 감사일기 쓰기
- 05:10 ~ 06:00: 자기 계발서 읽기
- 06:00 ~ 07:00: 소설, 에세이, 시집 중
한 권 읽기
✔️ 향후 계획
1. 주간 성찰 보고서: 매주 토요일
2. 월간 성찰 보고서: 매달 말일
3. 연말 총결산: 1년간의 변화와 성과 돌아보기
이 시무식은 나의 시간을 되찾고, 나를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작은 시작이다. 내가 가진 시간의 부를 빈곤으로 낭비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가꾸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시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이 심술궂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나는 그저 그것을 소비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시간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간 부자로서의 삶.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빈곤할 수도 풍요로울 수도 있다.
나는 오늘도 시간을 새롭게 살아내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걸음은 느릴지라도, 분명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작은 다짐일지라도, 이는 나를 다시금 일어서게 하고, 내가 주체적으로 나의 시간을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
삶의 새해를 시작하는 백수의 시무식은 나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시간을 되찾는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시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