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바다, 잃었던 나를 찾다

by 속초순보기

바다를 본 건 3년 만의 일이었다.


버스는 엔진 소리를 내며 비좁은 시골길을 흔들리며 달렸다. 익숙했던 산등성이들은 뒤로 뒤로 밀려났지만 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계곡 사이의 강물이 멀어지고 끝이 보이지 않게 될 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산등성이만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중간 기착지인 진부를 지나 횡계를 거쳐 대관령의 구불구불한 길로 올라섰다. 차창 밖으로 먼 아랫동네 강릉과 바다가 어렴풋이 보일 듯 말 듯 비쳤다.


대관령의 고갯길에서 버스는 힘겹게 엔진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버스가 산 방향으로 돌 때마다 하얗고 노란 꽃술을 가진 마가렛이 바람에 흔들렸다. 동해바다와 강릉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안 들어왔다 반복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비탈길에서 멀미가 났다.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고, 눈꺼풀 안쪽에 떠다니는 하얀 점들이 실처럼 이어졌다.


버스가 대관령을 넘어 성산쯤 도착했을 때, 아스라이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



강릉에 도착해 양양행 버스에 올랐다. 이제 2시간 후면 집에 닿을 터였다. 완행버스가 주문진을 향해 달리자 바다 냄새는 점점 짙어졌다. 비릿하고도 생생한 그 냄새가 코끝에 스미기 시작했다.



깊은 산골..


깊은 산골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한참 젖혀야 했고, 하루에 한 번 들리는 우체부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가 유일한 외부와의 연결고리였다.


골짜기 사이로 사람의 흔적이 드문 곳. 오로지 길 하나로 이어진 그곳에서의 3년은 기다림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우체부 아저씨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며,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볼 날을 고대했던 소중한 시간들.


샘물을 따라 흐르는 물웅덩이를 보며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서는 바다를 느낄 수 없었다.


밀려오지도, 물러가지도 않는 물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갈 것을 알았지만, 바다는 여전히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선 장날 사 온 미역에서 조차도 바다 냄새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땅의 냄새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 곳에 망설이지도 않고 들어갔다. 거기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그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보다 바다를 더 그리워했다.


버스가 주문진을 지나자 바다 냄새는 한층 더 강렬해졌다.


아, 이 냄새.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비릿하고도 짙은 바다 냄새.


그것은 코로 들어와 가슴을 훑고 지나 다리 끝까지 내려가는 듯했다.


차창 밖으로 옥빛 바다가 펼쳐졌다. 잔잔한 바다 위에 작은 파도는 해변에 닿았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했다.


수면 위 물결이 반짝이며 빛나는 모습은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에서 보았던 윤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너무 멀어서 모호하게 보였고,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듯했다.



“살 것 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20년 동안 매일 바라보았던 바다였다. 3년의 시간조차도 바다의 시간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바다는 내 삶에 그렇게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바다가 다시 내 앞에 있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것은 단지 풍경이 아니었다. 삶의 물결, 그 리듬과 변주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에게 속삭였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이 순간, 나는 나의 삶이 다시금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음을 알았다.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동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았다. 바람 속에는 그리움과 새로운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깊은 산골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바다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바다의 시작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곳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바다는 나를 그렇게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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