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가 여행을 하는 이유 '걷는 동안 삶은 나를 빛나게 했다'
2024년 12월 31일.
한 해의 끝자락, 세상은 모두 새해를 준비하며 분주했다. 해넘이를 정리하고 해맞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렘 속에서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2년 만의 병원 방문.
긴장감이 나를 감싸고, 머릿속엔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혹시라도 의사가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되면 어쩌나.
3살에 다쳐 8살 병원에서 기브스를 한채 아버지의 등해 업혀 나온 이후,2002년, 왼쪽 무릎이 처음 문제를 일으켰던 그 해를 잊을 수 없다.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픔과 상처뿐이었다.
침수된 시내와 끊긴 수도시설, 생존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그날부터 매일 생수 묶음을 옮기며 피해 복구를 도왔다.2리터짜리 생수 8개가 한 묶음으로 된 무거운 짐을 트럭에서 내리고 배달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무거운 건 절대 들지 마라. 네 다리는 평생 아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말을 지킬 수 없었다. 특히 재난 앞에서, 무거운 짐은 내 두 어깨에 자연스레 얹어졌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무릎이 탈이나서 일어서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고, 의사의 말은 내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다리가 이 정도인데 그동안 어떻게 버티셨죠?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수술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말에 나는 밤새도록 울었다.
내 삶의 끝이 여기서 정해지는 것만 같았다.
한달만에 다시 방문한 병원에서는 ' 가능한한 걷지 마라' 는 것이었다.
' 운동도 하면 안되나요?' 그렇다고 했다.
두번째 병원 방문후 ' 10년후든 5년후든 지금이든 어차피 수술을 할거라면 운동이라도 해 봐야 겠다' 결심을 하고 수영을 시작했고 20년을 지속했다.
그동안 병원은 종합병원으로 옮겨 계속 관찰을 시작했다. 정기검진은 한 달, 세 달, 6개월, 1년, 그리고 2년으로 점점 간격이 늘어났다.
2024 12월 31일 방문은 2년째 였다.
그동안 나는 퇴직 후 하루 만 보에서 많게는 이만 팔천 보까지 걸으며 여행을 이어갔다.
그러나 23년만인 8월부터 다시 통증이 찾아 오며, 굽혀진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행을 못 가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이 질문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리고 오늘, 병원에서 의사는 말했다.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통증은 내 다리 구조상 일시적이라며 정기검진 주기를 3년으로 늘려주었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세상이 마치 환한 빛으로 나를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의 걸음이 내 몸과 마음을 지켜준 이유였다는 것을.
퇴직 후 하루 만 보, 많게는 이만 팔천 보씩 걸으며 여행을 다닌 것.
매일의 걸음 속에서 내 마음은 건강해졌고, 몸은 새롭게 단련되었다.
만약 아프다고 집에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상태는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다.
재해 현장에서 생수 묶음을 들던 그때도,
무릎 통증에 침대에서 울던 그날도,
나를 지탱해 준 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였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그 전에 실컷 걸어보자."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무릎이 불편하고, 빨리 걷지도, 무거운 짐을 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얻은 삶의 기쁨과 에너지는 그런 한계를 넘어선다. 내 발자국 하나하나가 내 인생의 기적임을 나는 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나는 다짐한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내 다리가 닿는 곳마다 새로운 희망이 피어날 것이라고.
앞으로의 걸음 속에서 나는 여전히 빛나는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삶은 속도나 완벽함이 아니라, 얼마나 뜨겁게 걸어가는지에 달려 있다. 새해에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걸음 하나하나가 나만의 기적이니까. 내가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