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용서의 초상

by 속초순보기

결혼 후 3년 만에 친정을 찾던 날,


나는 시내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풍경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는 길목과 집 근처의 들꽃들은 마치 어제 본 듯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4시간이란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왔던 나는, 내린 순간 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자유를 만끽하듯 길 위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작은 발걸음을 보며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웃고 울던 기억들이 마치 물결처럼 밀려왔다.


아이는 길가에 핀 노란 냉이꽃을 꺾어 내게 내밀었다. 작고 따뜻한 손에 들린 꽃은 마치 잊고 있던 나의 추억을 소환하는 열쇠 같았다.


냉이꽃을 손에 쥔 채, 나는 부모님께 지은 크나큰 죄를 떠올렸다. 졸업과 동시에 신랑을 따라간 나를 두고, 부모님은 동네 체면 때문에 나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그 후 3년, 소문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걸 허락하셨다.


하지만 그 3년은 내게도, 부모님께도 길고 고된 시간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언제 꾸중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심정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하니 옥수수밭이 초여름의 햇볕 아래 초록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옥수수 사이로 강아지풀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강아지풀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있을 때, 대문밖으로 어머니가 나오셨다.


편지 한 통 없이 찾아온 나를 본 어머니는 놀란 얼굴로 서 계셨다. 그러나 내 옆의 아이를 보자 모든 감정이 녹아내리는 듯 아이를 번쩍 들어 안으며 말씀하셨다.


“야가 우리 순보기 딸이구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섭섭함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손녀를 품에 안고 싶어하던 그리움만 가득 담겨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방에서는 아버지와 동생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듯 그들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 쏠려 있었다.


그 모습에 잠시 서운함이 스쳤지만, 이내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오느라 고생했다. 거기 앉아라.”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는 무겁고도 따뜻했다. 꾸중을 예상했던 내게 돌아온 것은 다정한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그동안의 삶을 물으며 연신 질문을 쏟아내셨다.


“어떻게 살았냐, 고생은 많지 않았냐, 시부모님은잘 계시느냐?”


나는 답을 할 새도 없이 그저 눈만 크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문득 웃으시며 “멀리서 오느라 배고플 텐데 밥부터 먹자”며 부엌으로 향하셨다.


그날 어머니와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의 쑥덕거림과 집안 어르신들의 꾸중 속에서도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렸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동네로 나가셨다. 처음 보는 외할머니인데도 아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잘 따랐다.


어머니는 손녀딸 자랑을 하러 나가신 것이 분명했다.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어 두자. 언제 또 볼지 모르니 너랑 아이 모습은 남겨놔야지.”


그 말에 나는 울컥했다.


어머니는 3년 동안 얼마나 나를 그리워하셨을까.


나는 젊은 시절 어머니가 입으셨던 노란 한복을 꺼내 입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여동생이 입던 작은 한복을 입혔다.


우물가에 선 나와 아이를 남동생이 사진으로 담았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나와 아이의 첫 번째 사진이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어머니가 내가 떠난 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셨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그 사진은 내 손에 남아 있다.


사진 속의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듯하다.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는 이제 나만큼 자랐다.


사진을 꺼내 볼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뒤섞인다.


오늘 아침 그 사진을 다시 보며 생각했다.


부모님의 사랑은 나의 실수와 잘못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깊고 넓었다. 나는 그 사랑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사진은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을 타고, 내게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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