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진짜 여행을 시작했다.

by 속초순보기


사십여 년간 설악산의 품에 안겨 살던 내가 이른 점심을 먹고 행장을 꾸렸다.인생삼분의 이를 속초의 바다 내음과 함께 숨쉬던 나는, 이제 예순을 넘긴 나이에 과거 한양도성이었던 서울을 향해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 되었다.


'육십부터 여행을 한다' 며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고속버스에 오르니 두려움이 앞섰다.


이십대로 보이는 여자가 버스 짐칸에 자신의 신체보다 두 배나 큰 배낭을 넣고 흘러내리는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그녀는 등산객인듯 보였다.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차에 오른 그녀의 배낭은 가득 차 있었고, 짐은 배낭을 여민 위까지 올라 있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쓰러지지 않고 그 험한 설악산 등반을 마쳤다니, 문득 대견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서 혼자서 하는 여행을 제대로 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그녀처럼 새로운 도전을 해낼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머니마다 가득한 작은 가방을 선반 위에 올린 후 안전벨트를 매고 이내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 녀의 바로 뒷자리, 두 번째 좌석에 앉아 운전석과 창밖으로 펼쳐지는 대기실을 살펴 보았다.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과 탑승하는 사람, 마중을 나온 사람 중에는 한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심 다힝이다 싶었다. 저녁시간에 가방을 메고 야반도주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심히 염려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때 버스 탑승장에서 군복을 입은 청년과 갈래머리를 예쁘게 땋아 늘어뜨린 앳되 보이는 여자가 가슴을 맞댄 채 떨어질 줄 모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버스 앞에 놓여 있는 전자시계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출발시간 이분을 남겨놓고서야 그녀는 연인으로 부터 헤어나와 버스에 오르려다 다시 돌아가 짧은 포옹을 하더니 버스에 올랐다.


그들의 이별에서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이별을 보는 듯했다.


오후 강남행 고속버스 6시 20분 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5시 50분에 출발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15분정도의 짧은 시간, 자동차 속에서 남편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군인 청년과 소녀처럼 애절한 기분을 느끼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날들을 함께해 왔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갔다가 금요일 내려올게."

"도착하면 연락해"


일요일 저녁 터미널은 유독 군인과 그의 연인이 많았다. 속초는 최북단 고성과 경계를 두고 있는 도시로 길거리에서나 식당, 카페에서 자주 군인 커플을 마주 치는데,

대부분은 전방, 특히 고성에서 근무하는 남자친구를 보기 위해 면회를 왔다가 돌아가는 연인들이었다.


그들은 버스 출발 시간 전에 오르는 법이 없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남은 좌석을 확인하고 출발 시간을 확인한 후에야 서둘러 버스에 오르기 시작한다.


나도 한때는 저들처럼 남편과 헤어질때 똑같았다는 것을 상기해 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달만에 군입대한 남편을 보내고, 휴가를 나왔다 돌아갈때는 꼭 저들과 똑같은 마음이었다.


다만 내가 남고 남편이 떠나갔다는것만 달랐을뿐. 그 시절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절실했던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지만, 시간이 쌓이며 표현의 방식이 달라져 무덤덤함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남겨진 군인의 심정은 어떨까?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 세밀한 심정까지는 모르지만, 남겨진 나의 경험으로 볼때 , 당일은 함께 했던 기억으로 빈자리를 확인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또 면회 온다는 소식만을 기다릴 것이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던 남편이 "군대 시계는 거꾸로 걸어 놔도 간다"며,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제대를 할 날이 다가 올테니 너무 애타지도 말고, 아이랑 잘 지내고 있으라고 했던 기억이 따스하게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그 이별은 희망으로 점점 부풀어 가는 풍선처럼 커져만 갔었다. 남편이 돌아오는 제대일을 매일매일 손꼽아 세어가며 달력에 엑스 표시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별은 어떤 형태일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내가 집을 나가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에 돌아온다고 했지만 어떻게 될지 장담을 할수 없었다. 혼자만의 여행이 두려워 당장 내일 돌아 올수도 있고, 여행이 체질인 사람처럼 몇달후에 돌아 올수도 있을 터였다.


버스가 출발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여행을 마무리 하는듯 안도하는 표정으로 탑승하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피로함에 이내 눈을 감았다.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 시내 큰도로로 들어섰다. 해변을 따라 들어선 대형 건물들 사이로 속초해변이 보였다.


도로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해변과 매일 보았던 거리와 익숙했던 건물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영영 이도시를 떠나는 것도 아닌데,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괜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 왔다.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퇴직을 하자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쉬어라. 실컷 놀아라.""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또 무슨 일을 하려고 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런한 질문은 퇴직 3년 전부터 괴롭혔다.


"퇴직하면 뭘 해야 하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어머니는 내게 늘 '소매 안에서만 팔뚝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나는 소극적이었고,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내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남들이 잘 다져 놓은 길만 걸어온 내게 은퇴 후의 삶은 미지의 황무지와도 같았다.


불안했고, 두려웠다. 누구도 내길을 만들어 주지 않을거라는 사실이 나를 옥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퇴 후로 미루었던 여행을 통해 나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암 박지원이 마흔네 살에 열하를 방문하고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를 쓰지 않았던가.


연암의 시대 마흔넷과 내 나이 예순이 무엇이 다른가?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는 법이다.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이지만 내가 간 길이 아니지 않은가? 같은 길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된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이제는 내가 직접 그 길을 내 길로 만들어 가야겠다. 수많은 사람이 개척한 길일지라도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 새로운 길이 될 테니까.


오늘, 그 길 위에 섰다. 설악산의 그림자를 벗어나 새로운 땅을 밟는 이 순간, 삶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리라.설악산의 품에 안겨 살던 내가, 이제는 나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가 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여행의 끝에서 새로운 나를 만날 것이다. 육십의 나이에 시작한 이 여정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버스의 창문을 통해 설악산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내 마음에 묘한 평화가 찾아왔다.


( 3년간의 여행이야기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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