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달려 버스는 서울양양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마을들이 뒤로 뒤로 물러나면서 속초와 양양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고향 집,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등교하던 초등학교도 보였다. 어머니의 등에서 내려다보던 운동장은 끝없이 넓고, 교실은 아늑했다는 과거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
그곳에서 8남매 중 7남매가 졸업했고, 어머니도 다녔던 학교였다. 그 학교가 마을의 큰 주택보다 조금 더 커 보일정도 작아 보였다.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울려 뛰놀던 형제 모두 고향을 떠난 탓일까. 넓은 등판을 내어 주었던 부모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일까?
넉넉하고 익숙한 공간들이 작게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넓은 세상 서울을 향해 혼자 나서는 길에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 했기 때문일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 시키는 일만 했던 사람, 심지어 집안에서조차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항상 남편과 의논해야만 했던 나였다. 그런까닭에 홀로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일요일 저녁, 도로 위로 길게 이어진 자동차가 서울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동해안으로 여행을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데, 나는 왜 그 반대일까.
왜 하필 첫여행지가 서울일까?
1983년 MBC에서 방영한 대하 역사극이 그 시초였다. 조선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드라마는 1983년 3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방영 되었고, 드라마가 방영되는 도중 책 전집이 나왔다.
제 1권 송도에 부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조선왕조 500년은 48권 마지막 왕조의 비극으로 끝이 난다. 당시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드물어 웃집에 모여 앉아 보았던 드라마였기에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한참 후에 듣고 전 48권을 단숨에 읽었다. 드라마가 회를 거듭 할수록, 타 방송에서 같은 시대의 드라마가 방송 될때도 다시 꺼내 읽었다. ' 조선 왕조 500년'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한양도성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던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지였던 한양이 세계적인 이목을 끈 것이 88서울 올림픽이었다. 그해 서울이 내 미래로 들어 왔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88 서울 올림픽리 열리던 그해 초 남편은 군 복무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온 남편이 올림픽으로 인해 더 복무를 해야 할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복귀 했기에 초초하게 하루하루를 기다리기도 했던 해였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고 그 과정을 알리는 여행기자와 작가들의 이야기가 자주 티브이에 방송되곤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세계 여행을 떠나기전 부터 서울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였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였던곳, 외국 여행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울, 서울을 모르고서야 외국 여행을 한다는것은 있을수 없고, 해외 여행 도중 만나는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서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이유가 두 번째 였다.
세번째 이유는 서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년 참 어처구니 없는 이유다. 속초에서 40년, 30년의 직장생활 동안 가장 부러웠던 것이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두시간 이상을 출근해야 하고, 지옥철이라 불평의 소리가 들려 왔지만 서울은 내게 신문물과 트랜드의 중심이었다.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출발해 지하철도 타고, 빌딩숲을 걸어보고, 왕의 흔적을 따라 궁궐도 방문하고, 밤늦게까지 서울구경을 한후에야 심야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지금 살고 있는 속초는 문밖만 나서면 아는사람이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고, 직장생활 30년은 항상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단속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서울이라면 ? 이 모든것에서 부터 벗어나 새로운 나를 만나고 자유로워질것 같았다. 수 많은 사람속에서 나는 그저 한명의 나일뿐이니까.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곳, 나를 더 이상 옭아 매지 않아도 되는곳 .
그곳 서울을 향愛 ' 나를 찾는 여행' 이라는 이름으로 야반도주하듯 속초로 부터의 탈주를 감행했다.
2년반의 서울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